김포시 명문고 육성은 옳다

가장 평등하다고 보는 것이 실은 가장 불평등하다. 반대로 가장 불평등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 가장 평등하다. 논리 전개상 원용한 역설법적 어법에서 보면 전자는 기회, 후자는 능력 중심의 사유다. 김포시의 명문고 육성 차등 지원에 반발한 전교조측 철회요구는 전자 위주의 인식이다. 반대로 김포시의 타당성 피력은 후자 위주의 인식이다.

명문고 거부의 발단은 다 같이 무명화 하자는 것으로 귀납된다. 이것이 교육 가치의 지표일 수는 없다. ‘시장경제식 경쟁 논리로 조장한 학교 서열화는 비교육적’이라는 주장은 모순이다. 국가사회, 국제사회는 어차피 냉정한 시장경제식 경쟁이 불가피하다. 이의 인재를 키우는 학교 또한 학교 서열화가 곧 능력 중심의 평등이라는 패러독스는 이래서 성립된다. 기회가 박탈되지 않은 능력에 의한 평등이 진정한 평등이며,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야 말로 불평등의 실체다. 대학 입시경쟁이 치열한 마당에 하향 평준에 치우쳐 공부 잘하고, 또 잘 하고자 하는 학생의 노력과 재능 육성을 평등이란 어거지 틀로 배제하는 것은 국가사회의 미래 발전을 위해 불행하다.

김포시의 명문고 육성 저해는 하나의 사례다. 특수 목적고나 사립고 설립을 대개는 불평등이라는 이름으로 저해하는 것 역시 재고되어야 할 현안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가 바쁘게, 아니 졸업 직전부터 벌써 경쟁사회를 헤쳐나가야 할 고등학생들에게 평등을 내세워 경쟁의 면역을 잠재우는 것이 과연 참 교육인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기성사회 일각에서 학생이 학생의 본분인 공부하는 것을 애처롭게 보는 잘 못된 감상은 참으로 걱정된다. 학생이 더러 밤 잠을 덜자고, 심하면 코피도 흘려가며 공부하는 것은 당연하다. 입시위주에 치우쳐 전인교육이 지장받는 게 문제이긴 하나, 어떻든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학생의 도리다.

물론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있으면 못하는 학생도 있고, 공부 못하는 학생이 반드시 사회의 열등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부 잘하는 것을 돕는 차등 지원을 평등에 위배된다며 반발하는 것은 불평등 조장의 처사다. 김포시와 김포시교육발전협의회는 명문대학 진학률에 따라 예산을 차등 지원하는 지역 교육발전을 위한 명문고 육성에 일관된 노력이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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