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물' 기부금

후한(後漢) 영제(AD 168-189년)때 매관매직이 성행하였다. 이 무렵 최열(崔烈)이란 금만가가 500만금으로 대신의 반열인 사도(司徒)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사람들은 동취(銅臭·돈냄새)가 난다며 그를 경원하였다. ‘십팔사략’(十八史略)에 전하는 얘기다.

“돈에 꼬리표가 붙었느냐?”고들 흔히 말하지만 아닌 게 아니라 꼬리표 붙은 돈도 있는 것 같다. 권 아무개 전 주택공사 사장이 꼬리표 붙은 돈으로 구속됐고, Y대학과 몇몇 정치인들이 꼬리표 붙은 돈 때문에 골머릴 앓는 것 같다.

굿모닝 시티 대표인 윤창열씨 하면, 오피스텔인가 주상 복합건물인가를 사기 분양한 사건의 장본인으로 유명하다. 이미 3천476억원을 입금한 피해자들이 3천여명에 이른다. 그중에는 ‘살아보겠다’고 피땀 모아 저축한 돈도 적잖다. 윤씨는 이런 돈으로 권 아무개에게 거액의 뇌물을 주고, Y대학에 5억원을 기부하고, 민주당 국회의원들에게 후원금으로 적잖은 돈을 선심 썼다. 제 돈이 아니라고 여기 저기에 생색 내가며 뿌린 돈은 이밖에도 많을 것 같다. 거액의 비자금도 조성했다.

봉이 김선달을 연상케 하지만 김선달은 어려운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고 오히려 도왔다. 일제 때 평양서 어느 큰 도둑이 경찰에 쫓기게 되자 택시를 타고 달리며 훔친 거금을 길거리에 다 뿌리고 잡힌 일이 있지만 그 도둑은 친일파 집을 털었었다. 굿모닝 시티 피해자들이 윤씨가 여기 저기에 기부한 돈은 장물이므로 피해 변상금으로 돌려 줄 것을 제기해 문제가 됐다. 법률적 검토는 당국이 판단하겠지만 사실적 판단에 비추어 ‘장물’이란 주장엔 상당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비록 뒤늦게 밝혀지긴 했으나 무고한 시민을 못살게 만든 돈 가운데서 학교 기부금으로 받아 쓰고, 정치인이 후원금으로 받아 썼다고 한다면 문제가 없지 않다. 기부금이나 후원금도 돈 냄새를 잘 살펴 꼬리표가 붙은 돈인지 아닌지를 헤아려야 할 세태가 됐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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