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변호인 제도는 형사재판을 받는 피고인 중 돈이 없어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경우 법원이 대신 변호인을 선임해주는 제도다. 국선변호료는 1심당 기본액수가 12만원이며 변호인의 활동정도에 따라 법원이 액수를 추가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지만 대부분 50만원선을 넘지 않고 있다.
건당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이나 하는 일반 사건과는 달리 변호료가 턱없이 낮다. 이런 이유로 일부 국선변호인들은 사건을 배당 받으면 준비서면만 낸 채 적극적인 변론에 나서지 않거나 선처를 바란다는 식의 형식적 변론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그나마 지난해 서울지법 국선변호인으로 지정된 244명의 변호사 중 16%인 39명은 실제로 단 한 건의 사건도 수임하지 않는 등 공인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 변호사들은 국선변호 경력을 위해 국선변호인 신청을 해놓고 실제로는 바쁘다는 핑계로 사건을 맡으려 하지 않아 공판기일이 연기되고, 피고인들의 구속일수가 크게 늘어나는 등의 부작용도 빚어지고 있다.
이런 일로 서울지방법은 국선변호의 내실화를 위해 불성실한 국선변호인을 교체해 달라는 판사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지난해말 선임한 255명의 국선변호인 예정자 중 28명을 교체한 바 있다.
국선변호인들의 변론이 사설변호인에 비해 미흡하고 피고인 접견을 거의 하지 않는 것은 물론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하는 사건에 대해서도 반대 증거를 수집하는 노력이 크게 부족하다고 판사들은 말한다. 하지만 변호사들은 국선변호인들의 적극적인 자세도 중요하지만 국선변호료를 최소한 사설변호료의 절반 수준으로 대폭 인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런데도 변호사는 “돈이 안돼”고, 피고인은 “도움 안돼”는 게 국선변호인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국선변호제는 ‘건성’변호제”라는 말이 나돌겠는가. 무성의한 일부 국선변호인 때문에 대다수의 성실한 변호인들이 비난 받는 것은 유감스러운 노릇이다. ‘무료변호’하는 변호사들이 더욱 훌륭해 보이는 이유는 건성변호인과 대조되기 때문이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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