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한국을 절망의 땅이라고 한다

찬드라 구롱은 네팔 여인이다.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한다. 어느 날 밥을 사먹고 밥값을 내려고 보니까 주머니에 있던 돈이 없어졌다. 식당 주인은 밥값 몇천원을 못받았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행색이 초라한 찬드라를 행려병자 수용소를 거쳐 정신병원에 넣어 버렸다. “미치지 않았다” “집에 가게 해달라”는 그녀의 말은 통하지 않았다. 정신병자의 헛소리라며 가둬둔 채 약만 강제로 먹였다. 그렇게 6년4개월이 지나서야 찬드라는 정신병원을 벗어나 고국으로 돌아갔다. ‘부천외국인 노동자의 집’에서 일하고 있는 이란주씨가 펴낸 책 ‘말해요, 찬드라’에 나오는 처절한 이야기다.

소위 3D 업종이라 해서 한국의 근로자들이 힘들고 어려운 직종에 취업하는 것을 꺼리게 되자 이에 대한 수요를 타고 스리랑카·네팔·인도네시아·필리핀 등 빈곤한 아시아 국가 젊은이들이 대거 한국땅으로 몰려왔다. 그러나 불법체류자 신분이 태반인 이들 대다수는 불안한 신분을 빌미로 임금을 떼먹는 악덕 사업주에게 시달림을 당한다. 의료보험혜택을 받지 못해 병들고 아파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다. 부당한 노동조건, 일상화된 폭력과 차별, 불완전한 결혼, 그리고 자녀문제는 외국인노동자들을 늘 괴롭힌다. ‘코리안 드림’ 하나 안고, 땅 팔고 빚 내어서 한국을 찾은 외국인노동자들을 한국은 인간으로 취급해 주지 않는다.

이런 경우도 있다. 휴식시간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한국인 사장이 리폰을 불렀다. 리폰은 바로 가려다가 기름이 묻어 있는 장갑을 벗어 놓고 가려고 조금 주춤거렸다. 그 잠깐동안 부르르 화가 난 사장이 달려 들어 주먹질 발길질을 쏟아 놓았다. 한국인 직원들도 사장과 합세하였다. 리폰은 너무 맞아서 허리를 다쳤다. 잠시만 쉬게 해달라고 애원했으나 한국인들은 목덜미를 질질 끌고가 일을 시켰다.

참담한 현장은 한국 도처에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작업 중 잘린 손목이나 잃은 목숨은 인간의 그것으로 대접 받지 못했다. 필리핀 여성 테레사는 자동차 회사에 다닌다는 한국 남성과 결혼을 보장받고 결혼중매업체를 통해 한국에 왔다. 알고 보니 테레사가 만난 남자는 택시운전기사 였으며 매일 술에 쪄들어 있었다. 게다가 하루가 멀다 하고 그녀를 구타했다. 대답이 조금만 늦거나 한국말을 제대로 못하면 대번 주먹이 날아 왔다. 한국 국적이 없는 테레사는 이혼하는 순간 필리핀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죽은 척 하고 지낸다.

이렇게 가정폭력을 당하는 외국여성 대부분은 동남아 등 가난한 나라 출신이다. 1990년 한국 남성과 결혼한 외국여성은 한해 619명 이었으나 2002년에는 1만1천17명으로 17배 이상 늘어났다. 외국여성들은 결혼 2년 안에 이혼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현행 국적법은 결혼 상태를 2년 이상 지속한 뒤 소정의 귀화절차를 통과해야만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다. 외국인 카드와 여권을 찢고 이혼위협을 하는 등 폭력에 시달려도 그래서 이혼은 어렵다.

한국인들이 미국서 생활할 때 황인종이라는 이유 하나로 차별을 겪었다. 미국인들의 뻔뻔함에 분이 솟구쳐 얼굴을 붉혔다. 1960 ~ 1970년대 나라가 가난한 탓에 간호사와 광부로 독일에 돈벌러 갔고 중동의 열사(熱沙)에서 건설노동자로 일했다. 일본에서 ‘조센징’ 소리를 들으며 천대 받았다.

오늘날 한국인이 왜 이렇게 비인간적이 되었는가. 한국이 도대체 얼마나 잘 산다고 외국인노동자들을 괴롭히는가.

이제 외국인노동자들에게 한국은 꿈의 나라가 아니라고 한다. 한국은 그들에게 희망이 아니라고 한다. 절망의 구렁텅이라고 한다. 코리안 드림은 인종차별에 흐느끼고 가정폭력에 영혼까지 멍들었다고 한다. 지금 수많은 한국인들이 외국에서 살고 있는데 국내의 한국인들 도대체 왜 이러는가.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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