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들이 ‘자살은 항상 어떤 개인 또는 사회 전체에 대한 복수(G.버먼)’ , ‘다른 사람의 죽음을 원치 않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자살하지 않는다(스테켈)’ 고 했지만, 한국사회에 자살이 마치 유행처럼 번지는 것 같아 허망하다.
30대 주부가 생활고를 비관, 세 자녀를 아파트에서 떨어뜨리고 삶을 마감한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데 전국 도처에서 자살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남고생이 “나는 아무래도 공부와는 인연이 없는 것 같다”고 자신의 방에서 목매 숨졌고, 아들의 신용카드 빚으로 고민하던 40대 부부가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금속공장을 운영하는 남자의 30대 아내가 경매로 집이 넘어간 것을 비관, 목을 매 죽었고, 쌍꺼풀 수술이 잘못돼 고민하던 50대 주부가 농약을 먹고 목숨을 끊은 어이 없는 사건도 있었다.
한국의 연간 자살자 수는 1991년 6천593명에서 1998년 1만2천458명, 2002년 1만3천55명으로 10여년 새 2배 가까이 늘어났다. 공식집계가 이렇다면 실제는 더 많을 것이다. 한국인의 자살 원인은 ‘비관’과 ‘병고’가 70%를 차지, 실존적 문제로 인한 자살자가 많은 유럽 국가들과 대조를 보이고 있다. 경기 침체로 인한 생활고 비관형 자살이 2001년 844건, 2002년 968건으로 증가했으며, 초등학생이 과외 하기 싫다고 죽을 정도로 10대들의 자살도 지난해 273건이나 발생, 간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마 인간처럼 자유롭게(?) 자살을 감행할 수 있는 생물은 없을 것이다. 사람이 자살 충동을 느끼는 것은 자살만이 괴로운 현실로부터의 탈출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삶의 벼랑 끝에 몰려 누구도 자신을 도울 수 없다는 절망과 무기력 상태에서 자살은 실행된다.
더구나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빈부 격차가 확대되면서 빈곤층·실업자·신용불량자 등 ‘사회적 안전망’에서 소외된 계층이 마지막 도피 수단으로, 최후의 수단으로 자살을 선택한다.
이와 같은 자살 급증 현상은 대화의 부재와 죽음에 대한 가벼워진 인식 탓이기도 하다. 또 인터넷 게임 등을 통해 죽음 자체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게임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리셋(Reset) 증후군’도 자살을 행동으로 옮기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자살자보다 자살 기도자들이 10배~20배 많다는 사실이다.
기자는 적지 않은 자살자의 사연에 가슴 아팠었다. 월남 참전의 후유증으로 고뇌하던 막내 삼촌, 실연을 극복하지 못한 여대생, 가난 때문에 자존심과 영혼에 상처 입은 K시인, 연하의 남성과의 이별 후 홀로 먼 길 떠난 여인의 뒷 모습을 보았다.
한때는 자살도 인생의 한 과정이라고 여긴 적도 있었지만 그러나 자살은 자신에 대한 명백한 살인행위이며 가족과 이웃의 가슴에 못을 박는 행위다. 자살 미수자와 자살자의 가족들에게 미치는 엄청난 영향을 생각하면 자살은 개인적인 은밀한 행위가 아니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겡(1858 ~ 1917)은 1897년 ‘자살론’에서 “자살은 사회학적 현상”임을 통계적으로 밝혀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잇따르는 자살은 대부분 사회적 지원 체계가 무너진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개인적인 자살’이 아닌 ‘사회적 타살’이다. 왜 자살했느냐고 힐책할 수도 없다.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누가 감히 ‘한 많은 세상 일찍 잘 떠났다 ’고 할 수 있는가. 죽은 사람만 불쌍하고 억울할 뿐이다. 그것이 가난한 사회의 비극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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