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노동운동의 방향

노조원들, 그대들은 뭣을 위하여 투쟁하는가? 동료 노동자들과 연대한 각 가정의 행복을 위하여 노동권을 주장한다. 여기엔 단위노조 위원장 등 노조 집행부 같은 개별적 시각이 있어선 안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동등한 노동자로써 그이상 또는 이하가 아닌 동등한 자격이다. 직책은 다만 편의상 위임하였을 뿐이다.

노조원들, 지금 귀하들은 뭣을 위해 투쟁하는가? 노동운동을 빙자한 노동관료, 노동귀족들의 영화를 위한 하부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노동운동 조직의 와해를 책동하는 모략이라고 힐난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하여 자본층을 두둔할 이유는 없다. 자본의 오만을 경계하는 것은 평소의 지론이다.

하지만 말이다. 일선 노동자들이 노동관료나 노동귀족의 하부 도구화하는 것은 정말 불행하다. 노동이 없는 기업은 있을 수 없지만 자본이 없는 노동은 더욱 있을 수 없다. 굳이 선후를 가리자면 자본이 있어야 노동의 기회가 생성되는 기업이 있다. 안산 상록운수가 이를 실증적으로 말해준다. 노동계 싸움으로 직장폐쇄에 이른 이 기업의 노사는 한마디로 공멸이다. 기업의 사회기여 기회마저 박탈 당했다.

도대체 상급노조가 한국노총이든 민주노총이든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온건성과 과격성의 차이는 있지만 그같은 상급노조가 하급노조원들의 생계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급노조원들의 각 가정에 행복을 기여하는 것은 상급노조가 아닌 그들 자신의 직장, 즉 기업인 것이다. 그리고 기업은 노동자들이 기여하는 성장 속에 성장의 결실을 소득화 하는 것이 노동자의 권익이다. 상당수의 국내 기업은 노조가 무서워 중국 등 해외로 도피하고, 외자로 유치된 해외자본의 기업은 노조 때문에 문을 닫는 지경이 된 게 현실이다.

이래가지고 어떻게 경제성장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냉철히 반성해야 한다.

노동운동의 패턴 또한 이젠 마땅히 달라져야 한다. 경제성장의 저해가 자본층의 실책이 아닌 노동층의 실책으로 지목되는 객관적 상황에서 일선 노동자들은 노동운동의 방향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상급노조가 어디든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속한 기업을 자신의 힘으로 키워 자신과 가정의 안녕과 행복을 추구하는 철저한 직업의식이다. 더는 노동관료와 노동귀족을 위한 노동운동이어서는 안된다. 노동운동 역시 개혁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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