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 제도를 폐지하려는 정부의 계획은 관치금융을 탈피한 자율적 운영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300만명에 육박하는 신용불량자들의 소비행태를 도덕적 해이로만 몰아가 무작정 격리시킬 수만은 없는 상황에서 폐지 논의는 진즉 거론됐어야 옳았다.
이 방안은 30만원 이상 채무를 90일 이상 연체하면 무조건 신용불량자로 등록해 정상적인 경제 생활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드는 현행 제도가 오히려 신용불량자를 양성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신용불량자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현행 신용정보법은 금융거래 등에서 발생한 채무를 정당한 이유없이 약정된 기일 안에 갚지 못한 자를 신용불량자로 정의하고 은행연합회와 금융회사들이 정보를 공유, 관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 선진국 가운데 이처럼 법으로 신용불량자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으며 대부분 금융회사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한다.
세계적인 금융 추세에 따라 신용정보법에서 신용불량자 관련 규정을 삭제하는 대신 금융회사들의 자체 판단에 의거, 고객별로 금융거래 여부와 수준을 결정토록 한다는 정부의 방침은 서민들의 고통을 크게 덜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신용불량자 제도의 폐지가 연체금액 탕감 같은 사면조치는 아니다. 그러나 은행연합회가 연체정보 취합·관리 기준을 만들고 연체정보가 확인되면 획일적으로 금융거래를 중단시키는 현 제도에 비하면 훨씬 융통성이 있다.
문제는 현재 은행연합회가 취합·관리하는 정보가 연체 사실과 대출금액 정도라는 점이다. 향후 개인의 신용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금융 이용자의 수입과 재산, 수입 전망과 과거 금융 거래 내역 등 다양한 정보가 필요한 만큼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개인신용도에 따라 금융거래 수준이 결정되는 선진금융 관행을 정착시킬 수 있는 신용불량자 제도 폐지는 빠를수록 사회 융합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정부는 재경부와 금융감독원 등 관련 부처와 유관기관, 전문가들로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 국민 앞에 제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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