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도박게임

사행성 게임기 앞에 아이들이 몰려 있는 모습은 보기에 좋지 않다. 사행성 게임기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에는 성인 카지노 형식을 본뜬 게임기들이 잇따라 등장하는데다 돈처럼 쓸 수 있는 ‘칩’까지 도입하고 있어 더욱 걱정된다.

펀치게임은 원래 목표물을 주먹으로 힘껏 내리쳐 재미로 자신의 펀치력을 확인해 보는 게임이지만 여기에 ‘도박성’을 곁들여 666, 777, 888 등 같은 점수가 나오면 메달이 쏟아지도록 기계를 개조했다. 점수만큼 구슬이 나오게 돼 있는 ‘미니사격기’도 나왔다.

게임기에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단추를 누르면 게임기 안 화살표가 빙글빙글 돌아간다. 원 안에 배열된 0~25까지의 숫자 중 한 곳에 화살표가 멈추면 해당 숫자만큼 금속메달이 게임기 밖으로 쏟아진다. 메달은 문구점에서 현금 100원과 똑같이 사용할 수 있다. 회전판을 돌려주는 ‘딜러’만 없을 뿐 성인 카지노의 ‘룰렛’과 다를 게 없다. 대부분 ‘0’이란 숫자에 멈추기 일쑤지만, 간혹 ‘5’나 ‘7’앞에 멈출 때면 아이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이렇게 한 아이가 100원짜리 동전 20개를 모두 탕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15분 안팎이다.

처음에는 5~6학년 남학생들이 주로 했는데 요즘엔 2~3학년들이나 여자애들도 즐긴다. 어른들의 무책임한 상혼이 초등학교 앞이나 동네 문구점 앞에서 아이들에게 사실상의 ‘카지노 교육’을 하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문구점들간의 경쟁이 심해져 일부에서는 메달 대신 돈이 나오는 게임기를 설치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이 게임기들은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정식 등급허가를 받기는 했다. 그러나 게임기 업체들이 허가를 받은 뒤 게임기에 사행성을 가미해 제조하거나 일반 문구점 주인들이 게임상품을 돈으로 바꿔주는 등 불법 변칙운용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단속 주체가 모호해 어떤 행정기관도 현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단속이 실시되는 경우도 없다. 학교측이 어린이게임기 철거를 요구하는 게 효과적인 대응책이지만 그런 일을 할 훌륭한 학교가 있을 리 만무다. 오락의 탈을 쓴 도박게임에 물들고 있는 아이들의 장래가 염려스럽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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