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58세. 최종 학력 초등학교 졸업. 경력 금속노동조합 위원장. 4수 끝에 대통령 당선.
우리와 정확하게 지구 맞은 편에 위치한 나라인 브라질 대통령 룰라의 이력서다.
그의 정식 이름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하지만 흔히 브라질 국민들은 그를 룰라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이쯤에서 갑자기 남의 나라, 그것도 지구 맞은 편 아주 먼 나라의 대통령 이력을 엉뚱하게 꺼내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우리들의 코도 석자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독자 여러분들의 양해를 구하고 재미없는 얘기지만 계속 얘기하는 결례를 범하겠다.
룰라 대통령이 당선된 게 지난해 후반기이고 지난 1월1일 취임한만큼 노무현 대통령보다는 재임기간이 서너달 많은 편이다. 그런 그가 요즘 그야말로 브라질에 일대 개혁의 ‘바람’을 몰아 오고 있다.
4차례 출마 끝에 대통령에 오른 그에 대해선 사실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기대를 해온 측은 물론 1억명에 가까운 서민층, 더구나 빈곤층과 노동자들이었다. 지난 70~80년대 군사정권 치하에서 민주화를 열망했던 우리와도 흡사한 경험을 갖고 있는 브라질 대다수 국민들 입장에선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자 출신, 서민 출신, 초등학교 졸업장만 있는 그가 대통령에 오른 만큼 이와 비례해 참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쯤까지 얘기도 많이 지루할듯 싶다. 우리 현실과 참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계속 들어 주신다면 다음 대목으로 넘어 가겠다. 대통령 취임 후 그의 행보에 대해 우려의 시선으로 보는 층은 물론 기득권층이고 보수세력들임엔 틀림이 없다. 그동안 그들이 향유해왔던 기득권을 노동자 출신 대통령 집권으로 잃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건 당연한 귀결일 듯 싶다. 수십년간 독식해왔으니 그만큼 빼앗길 것도 많을듯 싶다.
그러나 빼앗길 것 없는 그는 이러한 기대와 우려를 극복하고 나름대로 우직할 정도로 밀어 붙이고 있다. 며칠전 브라질에선 공무원 노조의 대대적인 파업이 진행됐다. 룰라 정부의 공무원 연금 축소에 대해 선거기간중 룰라에게 지지를 보냈던 공무원 노조가 반기를 든 것이다. 외신을 타고 전해진 이들의 파업은 강경했다. 그러나 룰라는 단 한마디로 이들을 잠재웠다.
“저에게 보내주는 지지 속에는 애정도 있고 애증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 속에는 자신은 어느 특정 계층의 대통령이 아니라 모든 계층의 국민들을 포용하는 대통령이란 의미가 담겨져 있다. 노조위원장 출신답게 달변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현란한 수식어나 대중을 휘어 잡는 ‘사자후’는 더욱 아니다. 다만 힘을 줘야 할 부분에는 힘을 싣고 부드럽고 섬세한 부분은 자상하게 설명하는듯한 어조다. 한 대목만 더 들겠다.
브라질은 수도인 브라질시티를 제외하고 나머지 지방들은 여전히 황폐하고 발전이 더딘 편이다. 이런 점도 우리와 흡사하다. 그래서 그는 공무원 노조 파업 이후 지방을 순회하며 지역간 균형 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지방 방문에는 장관들이 함께 하고 있다. 수많은 군중들이 모인 연단에서 룰라 대통령은 제일 먼저 빈곤문제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어떠한 역경이 닥쳐도 이 점만은 꼭 해결하겠다”고 호소하고 있다.
기자의 따분한 사설은 여기서 끝을 맺는다. 그런데 아주 잘 만든 연속극이나 드라마를 보고 난 뒤처럼 가슴이 퀭하다. 출범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참여정부 주변에서 벌써부터 삐끄덕 거리는 소음이 들려 오고 모 단체장이 대권선언을 시사하는 현실이 차라리 드라마였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허행윤 제2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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