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헌 회장 자살이 말하는 것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의 투신 자살은 실로 충격이다. 세계적 관심사로 외신의 이목을 끌고 있다. 6자회담 성사로 북핵 위기 해결에 간신히 실마리가 마련된 상황에서 4일 새벽 갑자기 일어난 그의 자살은 우여곡절 끝에 진전돼온 남북관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된다. 물론 개성공단이며 금강산 관광사업 등 현대아산이 벌인 대북사업은 제도적으로 추진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정 회장이 중심이 된 민간 대북사업은 북측이 현대와 정 회장 개인에게 갖는 친분, 즉 각별한 신뢰가 바탕에 깔려있는 사실이 부인될 수 없는 점을 간과키 어렵다.

정 회장은 대북사업과 현대상선 지분관계 등 할 일이 많아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죽음을 선택한 것은 작금의 시대상이 그를 지나치게 벼랑 끝으로 몰아 세운 데 있다. 물론 확실한 자살 동기는 더 있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북송금 및 현대 비자금 150억원 사건의 핵심 열쇠를 쥐고 있는 그가 영원히 침묵을 지키고만 것은 그간의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정치권 인사와 진술이 엇갈리는 등 괴롭힘을 당한 게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만은 거의 분명하다. 대북송금에 대한 실정법적 규명이 사실론적 실체보다 국익과 민족의 미래를 위한 역사로 보아 과연 얼마나 우선할 수 있는가를 성찰케 해준다. 민족적 대사에 실정법적 기록은 시효가 현세이지만 사실론적 기록은 영원한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남북대화가 필수며, 당국간 대화의 물꼬를 튼 것은 곧 현대임을 돌이켜볼 때 정몽헌 회장의 죽음은 참으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현대가 아니면 대북사업을 감히 나설 수 없었던 바로 그 대북사업에 고 정주영 명예회장에 이어 강한 집착을 보였던 그가 이제 비록 유명을 달리했지만 두 고인의 유지를 이어 앞으로의 대북사업 역시 큰 차질이 없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기 위해서는 그간의 대북관계를 눈앞에 보인 정치적 이해관계에 매달려 과장하거나 폄훼하는 정쟁 도구화로 삼지 말아야 한다. 소의(少義)보다 대의(大義)에 치중하여 멀리 볼 줄도 알아야 한다.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 장례식장 3층 30호 빈소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빈소로 썼던 곳이다. 그의 다섯째 아들되는 정몽헌 현대아산회장이 아직도 한창 일할 55세 나이에 이승을 떠나 부친에 이어 소천(召天)을 기다리고 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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