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 시대를 만들기도 하지만 시대가 영웅을 만들기도 한다.
‘리진샤꾸’는 2차대전에서 일제 군벌이 만든 조센징(조선) 전쟁영웅이다. 우리 이름으로 이 아무개가 되는 ‘리진샤꾸’ 일등병은 남양 군도서 미군을 맞아 용감하게 싸우다가 총탄이 떨어지자 육탄공격에 나서 총검으로 미군을 10여명이나 차례로 찔러 죽이고 장렬히 전사했다는 것이다. 당시 한국인 징병을 미화하기 위해 만든 허무맹랑한 얘기인데도 일제는 이를 교과서에까지 실었다.
수년전 중국 서남해에서 미군 정찰기에 측면 추돌해 추락사한 중국 공군기 조종사를 중국 정부는 영웅으로 급조했다. 임무에 끝까지 충실하다가 산화했다며 부인과 아들을 영웅 유가족으로 대접했다. 그무렵 부시 미국 행정부에 대한 강경책으로 중국은 기왕 죽은 공군 조종사를 중국의 인민단합에 구심점으로 삼았던 것이다.
미국 여군 제시카 린치 일병은 부시 행정부가 만들어낸 전쟁영웅이다. 린치 일병은 당초 교전중 부상해 포로가 됐다가 특수부대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된 것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그의 부상은 차량충돌 때문이었으며 구출작전도 과장된 연출인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이럼에도 미국 정부는 지난 7월21일 린치 일병에게 청동성장·명예전상장·전쟁포로메달 등 훈장을 무더기로 수여했다. 연약한 여군을 전쟁영웅화 함으로써 미 국민의 대이라크 전승감 고취에 증폭 효과를 기하기 위한 것이다.
고도로 발달된 민주주의 사회는 다원화의 협동체이므로 영웅이 나올 수 없다. 만약 영웅이 나온다면 불행한 시대상을 반증하는 것이 된다. 민주주의가 발달했다는 미국에서 전쟁영웅을 만들어낸 사실은 실로 아이로니컬한 일이다.
한 시대의 시대상 이면에는 진실이 외면된 이토록 추악한 조작도 있다. 영웅이 시대를 만들기도 하지만 시대가 영웅을 만들기도 한다. 우린 어떤 시대에 사는가?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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