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산의 아침/‘氷炭不相容’ 정치권에 대한 선택은

지난 3일 국회에서는 한나라당이 단독 제출한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이 민주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표결에 부쳐져 찬성 150, 반대 7, 기권 2, 무효 1표로 처리됐다.

국회에서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이 의결된 것은 55년 임철호 농림부장관, 69년 권오병 문교부장관, 71년 오치성 내무부장관, 2001년 임동원 통일부장관에 이어 5번째이며 참여정부 들어서는 처음이다. 과거 해임건의안이 의결될 때처럼 이번에도 정국이 급속하게 냉각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해임건의안을 제출해 성공한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권의 중간 평가’를 들먹이며 건의안을 노 대통령이 수용하지 않을 경우, 강력한 대여 투쟁에 나서겠다고 청와대에 압박을 가하고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수용여부를 고심중이며, 여당의 민주당은 노 대통령에게 ‘수용거부’를 요구하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번 해임안 의결후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결과’나 ‘의회의 폭거’, ‘헌법 무시’ 등 갖가지 주장이 나오고 있으나 그 깊숙한 내막을 들여다 보면 내년 총선을 대비한 ‘주도권 싸움’의 산물이라고 해도 결코 틀리지 않을 것이다.

단적인 예로 한나라당 고위당직자들 중에는 “김 장관이 시민·사회단체들의 지원을 통해 조직을 구축하고 있다”든가 “내년 총선의 총 사령관은 김두관”이라는 식의 말을 서슴없이 해왔다. 즉 사인선사마(射人先射馬·상대방을 쓰러 뜨리고 굴복시키려면 그 사람이 의지하고 있는 것을 먼저 쓰러 뜨려라)를 행한 것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보기에 내년 총선에 가장 큰 걸림돌은 행정과 경찰을 맡고 있는 김 장관이 어쩌면 가장 부담스런 존재였을 것이다.

이에 대해 해임안을 저지하지 못한 여당 민주당은 무기력했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이런 행태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내년 총선을 대비해 살아남기 위한 고육책이었는지 모르겠다. 당내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신주류와 구주류로 갈리고 있는 상태에서, 더구나 소수여당으로서, 해임안 저지에 나섰다가 표대결에 질 경우, 한마디로 당이 붕괴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무모한 당랑거철(螳螂拒轍·사마귀가 두팔을 벌려 수레바퀴를 막는다)을 하기보다는 훗날을 기약하자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양당의 속마음이야 어떠하든 이번 해임안을 보는 국민들의 가슴은 쓰리고 공허함이 가득찰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정치권은 알아야 한다. 선거라는 것은 국민들의 다양한 기대와 희망을 하나로 묶어 국가적 에너지를 창출하는 축제가 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이번에 보여준 행태는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타협하기 어

려운 사이)의 극치였기 때문이다.

제17대 총선은 내년 4월15일에 실시됨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두번다시 보기싫은 행태로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권. 국민들은 내년에 정치권을 어떻게 심판할 지, 그 해답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지역갈등’해소를 부르짖는 정치권이 오히려 더욱 다양한 ‘갈등’만을 양산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일형.정치부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