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정치의 붕괴 현상이 집권 여당에서 가속화하여 혼란을 더해 준다. 이른바 민주당 잔류파와 탈당파 간의 신·구주류 분당을 앞두고 중도파를 대상으로 하는 세규합에 서로 혈안이 되고 있다. 이들의 눈엔 태풍 ‘매미’가 할퀴고 간 참상, 목전의 농업붕괴 위기, 이라크 전투병 파병 등 당면 과제도 뒷전인 것 같다. 오는 20일로 시한을 정한 탈당 움직임은 집권당의 핵 분열로 헌정사상 초유의 무중력 상태를 가져오는 정당정치의 일대 이변이다. 집권당이 분당되는 것 또한 정당사상 초유의 일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게 아니어서 새삼 놀랄 이유는 없다. 또 민주당 당내 일은 그들의 책임이다. 그렇긴 하나 간과하지 못할 것이 있다. 민주당 잔류파는 반노 세력이고 탈당파는 친노 진영임은 부인될 수 없는 객관적 현실이다. 민주당 간판을 고수하는 잔류파는 여당에서 야당이 되고, 민주당 간판을 부정하는 탈당파는 새로운 신당 간판을 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주목되는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입지다. 노 대통령은 당분간 민주당 당적을 떠나지 않을 뜻을 비쳤다. 탈당파의 신당과도 무관함을 강조하였다. 내년 총선 또한 초연할 것이라고 했다.
그럼, 대통령과 정당 구도는 무엇인가가 문제로 대두된다. 대통령 역시 반노 세력인 민주당 구주류와 코드가 맞지않다고 여기는 게 사실이다. 그런 민주당에 당적을 남긴다 해서 민주당이 집권 여당일 수는 없다. 그렇다 하여 친노 진영인 탈당파의 신당이 생겨도 대통령이 입당하지 않으면 여당이라 할 수 없다.
대통령은 정치권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국정에만 전념하겠다고 하나 이도 한계가 있다. 비록 대통령중심제이긴 해도 민주주의는 정당정치며, 정당정치는 의회정치가 상궤임을 일탈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국정이 국회와 무관하지 않은 것처럼, 대통령은 정치권과 결코 무관할 수 없다. 정당, 즉 정치권의 무중력 상태는 이래서 국정의 혼란을 가져온다. 책임정치가 실종되기도 한다.
대통령은 대선에서 몰표를 준 민주당 구주류의 텃밭에 대한 원려로 인해 애매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것 같으나 그럴 계제가 아니다. 책임정치를 구현하자면 분명한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 국회와 더불어 처리해야 할 국정 현안이 산적해 있다. 이런 마당에 국정 최고의 책임을 져야하는 대통령이 정치권의 무중력 진공 상태를 방기하는 것은 결코 정도가 아니다. 이를 정리해야 하는 것 역시 대통령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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