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자유

보리스 파르테르나크의 대하 장편소설 ‘닥터 지바고’는 러시아혁명을 배경으로 시인이자 의사인 한 지식인의 운명적 삶을 그렸다. 1958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소련 정부의 압력으로 파스테르나크는 수상식에 참석하지 못했고 이 책의 소련내 출간도 금지됐다. 작품 속 주인공들이 혁명의 이념에 어울리지 않는 ‘반동적인’ 인물들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닥터 지바고’는 데이비드 린이 감독하고 오마 샤리프가 주연한 영화로도 유명하다. 철로에 쌓인 눈(雪)을 분수처럼 양쪽으로 뿜으며 달리는 열차, 눈과 얼음의 성(城)안에서 언 손을 입김으로 녹여가며 시(詩)를 쓰는 주인공, ‘내 사랑은 어디에(Somewhere my love)’로 시작되는 감미로운 주제곡은 한없이 마음을 사로 잡는다.

소설로서 수많은 독자를, 영화로서도 세계적인 팬을 갖고 있는 ‘닥터 지바고’가 최근 러시아에서 다시 수난을 당하고 있다는 외신(外信)이 들어왔다. 러시아 연방교육부가 이 소설을 청소년 필독도서 목록에서 제외키로 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결정은 푸틴 정권하에서 싹트고 있는 러시아 민족주의가 과거 공산주의 치하의 ‘그림자’보다는 제정 러시아와 소비에트의 ‘영광’을 재현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파질 이스탄터 등 러시아 저명작가 13명이 공개 항의 서한을 보내고 “푸틴 정권의 관료주의 집단이 역사를 자기들의 입맛대로 왜곡하려 한다. 어린 학생들에게 역사의 비극을 있는 그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집권층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목적에 따라 역사적 진실이 통제되고 재단돼 온 사례를 우리도 짧은 근·현대사 속에서 여러 차례 목격해 왔다. 그러나 소위 ‘역사 바로 세우기’는 권력자들이 늘 빠지기 쉬운 치명적인 ‘자기 함정’이 될 수도 있다.

소설‘닥터 지바고’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지배적이던 당시 문학 풍토에서 보리스 파르테르나크가 제정 러시아로부터 러시아 혁명을 거쳐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격동의 러시아 근·현대사를 ‘피와 살’을 가진 탁월한 문학작품으로 형상해 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학작품이 자유에서 구속돼서는 안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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