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수원지역에서 정치적으로 꽤나 총망받고 있는 한 인사를 만났다.
“내년 선거에는 한번 나서야지요”하고 물었더니 대뜸 “나는 정치판의 오염물질(汚染物質)은 되지 않으렵니다”하고 답했다.
바야흐로 정치 시즌이 본격적으로 도래하고 있다. 내년 4월15일 실시되는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은 통합신당과 분당됐고 22일부터 국회의 1년 일정중 가장 빛을 발하는 국정감사가 시작됐다.
또 지역에서는 너도나도 출마준비에 나서 우후죽순처럼 새로운 얼굴들이 고개를 처들고 있다.
외형적으로 본다면 열심히 일하는 의원, 변화를 모색하는 정치지망생 등으로 표현될 수 있을 정도로 활기찬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속을 한번 들여다 보면 영 신통치가 않은 것 같아 ‘정치를 왜 하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국정감사는 시작되자마자 ‘어제의 동지가 적으로’ 변모해 증인 바꿔먹기나 하고 ‘때는 이때다’는 듯이 여야를 막론하고 폭로성 발언들이 재현되고 있다. 또 지역주의 타파를 언제 부르짖었느냐는 듯이 서서히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조짐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으며 특히 내년 총선을 준비하는 초년병들까지 ‘지역정서가 어떠니, 호남·영남세니’하며 저울질을 하고 있다. 정치행위라는 미명하에 지금 정치인들은 당리당략에 눈멀어 정치공해(政治公害) 만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보아야 할 때다.
학자들의 정치적 정의는 다양하지만 어느 누구도 공해를 발생시켜야 한다는 정의는 없다.
일각의 학자들은 공동생활속에 개개인의 풍습이나 도덕 등 자율적인 규범만으로 유지되지 않는 질서를 국가권력이란 배경으로 법과 그 밖에 방법을 동원해 유지시키는 작용과 함께 위로부터의 통치뿐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항쟁 및 그 밖의 활동을 정치라고 정의하고 있다.
미국 학자들을 중심으로 정립된 거번먼트(goveknment) 정치는 국가만으로 한정되는 인간활동뿐 아니라 회사, 노동조합, 학교, 가정 등 어디서나 발생하는 이해 대립이나 의견차를 조정해 나가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정치를 계급적 시각에서 고찰해 피지배계급으로 통칭되는 대중이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수호하기위해 다양한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저항하는 행위자체를 정치라고 규정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의 목적은 최고선(最高善)에 있는 인간을 인격적인 존재로 완성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현대사회에 들어서는 정치 목적을 정치·경제·권력·국가대 국가 등 각종 국·내외적 제도나 체제의 모순을 해결하는 것으로 정의하는 학자가 많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정치는 과연 어느 정의에 해당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정치판에 몸담은 모든 이에게 ‘정치를 왜 하느냐’고 묻고 ‘우리가 갖고 있는 정치·경제·사회적 모순을 제거해 국민의 화합과 권익을 보호하기위해’라는 답을 기대한다면 어리석은 짓일까?
지금 우리 국민들은 IMF당시때 보다 더 심한 경제적 고통으로 도탄지고(塗炭之苦)의 심정이다. 정치인들은 이런 국민들이 난의포식(暖衣飽食)의 기대를 잃지 않도록 공해로 뒤덮인 정치판을 확 뒤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년 4월15일은 축제일이 아닌 분노의 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일형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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