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산

안양·군포·안산·시흥시가 경계로 삼는 수리산(修理山)은 높이가 475m로 일명 견불산(見佛山)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안산군(安山郡)의 명산으로 봉우리가 매우 빼어났으며 산곡이 깊었다. 북쪽으로 안양시, 동남쪽으로 군포시, 서쪽으로 안산시와 접하고 있어 수도권 관광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는 산이다. 산의 북쪽 골짜기에 있는 안양동의 작은 산촌 담뱃골은 조선 후기 헌종이 천주교를 박해하던 기해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 들어와 담배를 재배하며 살던 곳이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이들 중 이 땅의 두번째 신부인 최양업(崔良業)의 가족들이 겪은 수난은 매우 처참하였다. 천주교 신자들은 당고개에서 죽음을 당했는데 최양업의 어머니 주검은 못 찾고 아버지 최경환의 주검만을 거두어 수리산 골짜기에 묻었다. 그 무덤자리는 지금도 남아 있어 천주교 신자들의 순례지가 되었다.

이 수리산이 오늘날은 수도권 남부의 각종 도로 계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기존의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동서로 산을 관통했고, 남북으로 산을 뚫을 수원~광명간 고속도로가 추진되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다 또 건설교통부가 새로운 국도대체 우회도로를 설계 중이어서 산이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될 위기에 처했다.

수리산에는 이미 서울외곽순환 고속도로 중 1천886m의 수리터널과 1천254m의 수암터널이 뚫려 있다. 게다가 올해 1월 수원~광명 간 수도권 서부고속도로 민자사업 승인신청서가 건교부에 제출된 상태다. 이 도로에는 148 ~ 500m의 짧은 터널 3개와 1천540m의 터널 1개, 그리고 3 ~ 4개의 고가교량이 개설돼 수리산을 종단할 계획이다. 도로계획이 모두 진행될 경우 수리산 자락을 통과하는 터널이 8개나 된다. 고속도로가 수리산과 의왕시 초평동 일대 1.7km 구간을 통과하게 되면 인근 구봉산, 생태계의 보고인 왕송저수지의 환경 파괴는 물론 마을이 분리되는 등 피해가 크다.

‘수리(修理)’라는 산명(山名)도 예사롭지 않은 터에 산자락에 도로터널만 8개가 된다면 각종 문화재와 녹지 훼손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전설 속의 산신령이 계시다면 아마 대로할 것이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라니까 노선은 당연히 변경돼야 한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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