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장관의 '불수'

‘다른 사람의 수염을 닦아 준다’는 뜻으로 불수(拂鬚)란 말이 있다. 송나라 재상 구준이 회식 자리에서 자신도 모르게 국건더기를 수염에 묻혔다. 이를 본 참정 벼슬에 있는 정위가 구준 앞에 공손히 다가가 손수건을 꺼내어 수염에 묻은 국건더기를 닦아내는 모습이 여간 공손한게 아니었다.

이를 본 구준은 껄껄 웃으면서 “여보게! 참정이면 당상관인데, 그래 윗 사람을 위한답시고 수염닦는 일(불수)까지 하는가. 체통을 지키게나!”라고 말했다. 십팔사략(十八史略) 송사(宋史) 구준전(?準傳)이 전하는 고사다.

“왜 우리는 대통령이 태풍이 왔을때 오페라를 보면 안되는 이런 나라에서 살아야 하는가”라고 최낙정 해양수산부 장관이 어느 공무원 특강에서 열변을 토한 모양이다. 그러면서 일부 언론 보도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한 것으로 전한다.

결론부터 말해서 비록 대통령이 오페라 관람이 예정된 것이라 할 지라도 14호 태풍 매미가 불어닥쳐 온 나라가 긴장하고 국민들이 고통받는 시각에 취소하지 않고 굳이 구경한게 적절치 못한 것은 백번 말해도 부정될 수가 없다.

최 장관의 말 뼈는 이를 보도한 신문을 힐난한데 있는 것 같지만 당치않다. 어떤 이는 대통령도 사생활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권력 주변은 사생활도 감시의 대상이다. 최 장관은 클린턴의 하와이 방문을 예로 들었으나 의문이다. 오히려 사생활인 르윈스키 스캔들로 클린턴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 게 미국의 언론이다.

그러나 저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께 송구하다”고 말해 일단락 지은 일을 두고 최 장관이 왜 그런 말을 꺼냈는지 이 점이 이해가 잘 안된다. ‘고정관념을 깨자’는 의미로 했다지만 이런건 고정관념 타파의 범주에 들지 못한다.

그는 해양수산부 차관으로 있다가 장관으로 발탁되었다. 만약에 발탁해준 보은의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이라면 윗 사람의 수염을 닦아준 정위의 과공과 같다. 과공도 비례라고 하였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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