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악용되는 '기게스의 반지'

국회의원들은 아주 대단한 특권을 갖고 있다. 바로 불체포특권(헌법 제44조)과 면책특권(제45조)이다. 불체포특권은 현행범이 아닌 한 국회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는다. 회기 전에 체포 또는 구금된 때에는 국회의 요구가 있을 때 회기 중에 석방된다. 면책특권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해 국회 밖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렇게 국회의원에게 특권들이 부여된 것은 자주성, 독립성을 갖고 직무를 수행하라는 뜻이다. 특히 불체포특권은 행정부의 탄압으로부터 국회의 기능을 지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오늘날 불체포특권은 면책특권과 더불어 민주정치의 상징으로 꼽힌다.

국회의원에 대한 불체포특권은 과거 군주 권력에 대항하기 위한 의회의 생존 수단으로 등장했다. 영국은 1603년 의회특권법을 제정하여 왕의 부당한 권력 행사에 반대하는 의원을 보호하기 위해 불체포특권을 만들었다. 이래서 영국에 의회 주권의 시대가 열렸고 의원의 특권은 확고히 정착됐다.

영국의 영향을 받은 미국이 권력분립의 기초 아래서 1787년 연방헌법을 제정하면서 불체포특권을 헌법상의 특권으로 선언했다. 우리나라는 1948년 건국 헌법 이래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명문으로 규정,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이 불체포특권이 작금 부정적으로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는 것은 국회의 책임이 크다. 국회의원의 범죄 행위에 대한 정당한 법 집행을 막는 데 불체포 특권이 악용되기 때문이다. 비리 혐의에 연루된 의원의 체포를 막기 위해 잇달아 몇달동안 열었던 임시국회가 바로 ‘방탄국회’의 효시다. 방탄국회는 불법 비리 행위를 저지른 의원들을 정당한 사법절차로부터 도피시키려고 걸핏하면 임시국회를 연 데서 기인한 말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국가론’에 기이한 반지와 ‘기게스’라는 목동 이야기가 나온다. 그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조금 돌리면 반지를 낀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다. 투명인간이 되는 것이다.

유형이나 무형이나 힘이 생기면 욕심이 동한다. 처음엔 착한 목동이었던 기게스는 반지의 힘을 이용해서 국왕을 죽이고 그 왕비를 부인으로 삼아 새로운 왕이 된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이건 ‘기게스의 반지’를 낀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만일 잘못을 저지르고도 사법적 정의에서 면탈하려 한다면 불체포특권을 부여받은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은 기게스의 반지와 다름 없다.

헌법이 불체포특권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치를 확보하기 위한 제도다. 기게스의 반지가 선용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처럼 불체포특권도 마찬가지다. 원칙적으로 국회의원의 헌법상 특권은 존중 받아야 한다. 그러나 불체포특권은 독재 권력의 횡포와 탄압에 맞서서 의정활동을 벌일 때 보장되는 특권이지 범법 행위를 저지른 국회의원을 부당하게 방패막이 하는 권한이 아니다. 동료의원 비호수단으로 전락해서는 안된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했다. 절대 권력은 국왕이나 대통령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개인적이고 부도덕한 비리에 대한 심판마저도 차단할 수 있는 지위도 절대 권력에 속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절대 권력이란 없다. 절대 권력자도 없다. 불체포특권 조항에 “뇌물 수수 등 의정활동과 무관한 개인 비리는 예외를 인정한다”고 단서 조항을 추가하라는 주장은 이래서 자꾸 제기된다.

문제는 헌법 개정이든 관련 법률 제·개정이든 모두 국회의 결정 사항이라는 점이다. 국회의원들이 자기의 권리를 제한하려 하겠느냐, 이 말이다.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불체포특권을 악용해선 안된다는 것을 의원윤리강령에 넣든지,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국회의원들이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앞으로도 악용된다면 ‘기게스의 반지’는 바닷 속에 던지는 게 좋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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