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승 SK 회장 비자금의 정치권 로비 의혹에 이어 모 그룹 대표의 대선자금 공여설이 제기되는 등 정치권이 또 다른 정치자금 회오리에 휘말리고 있다. 대검의 손 회장에 대한 수사는 분식회계에 의한 비자금 조성에 초점을 두어 수백억원의 비자금 중 100억원을 지난 대선 때 정치권에 건넨 혐의를 밝혀냈다. 이런 가운데 서울지검은 또 다른 혐의로 구속기소된 모 그룹 대표가 역시 대선 때 여당 후보 진영에 95억원을 전달했다는 내용이 담긴 회사 내부 녹취록을 입수해 집중 조사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조사 결과가 어떤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나 현대 비자금 150억원 플러스 알파에 이어 잇따라 불거지는 재계의 정치권 유착은 실로 유감이다. 대검은 SK 회장의 비자금 정치권 유입에 본격적인 정치인 대상의 소환 조사에 나설 것으로 전해져 손 회장 비자금만으로도 정치권에 상당한 충격파가 예상된다.
물론 이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도 다양하다. 한나라당은 기획사정의 의혹을 드러내고 민주당은 대선 당시 선대본부를 맡은 신당 소관이라며 발뺌하는 데 비해 신당측은 영수증 처리한 후원금 외엔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는 이렇게 큰 소리 치지만 속으로는 대선자금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형편이다.
선거사상 가장 돈을 적게 들였다는 지난 대선마저 이토록 재계 자금의 유착 의혹이 제기되는 등 대선이 끝나고 나면 으레 문제가 되는 불법자금설은 불치의 고질병 같아 크게 개탄스럽다. 이러한 재계의 불법자금 제공은 기업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으로 말하여 정치권의 책임이 단초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종의 보험료 성격으로 건넨 면이 또한 없지않아 얼마 전에 전경련이 결의한 불법 정치자금 제공 거부가 앞으로 과연 이행될 것인지 의문이다.
재계의 불법 정치자금 수사가 있을 때마다 우려되는 건 재계도 응분의 제재를 받아야 하지만 기업의 경영 위축으로 인한 경제 문제다. 그러나 철저한 수사는 마땅하다. 정치권에 대한 성역없는 수사로 재계의 불법자금은 판도라의 상자처럼 재앙을 불러 들인다는 인식을 다시 한번 깊이 각인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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