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에 생각하는 우리 글, 우리 말

오늘은 557돌을 맞이한 한글날이다. 재론할 여지도 없이 한글은 세계 언어학자들도 인정하는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언어다. 유네스코가 1997년 ‘한글은 세계가 보호해야 할 문화유산’이라고 선포했다. ‘모든 언어가 꿈 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라는 격찬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는 한글을 경시하고 있으니 실로 통탄할 일이다. 심지어 국경일이었던 한글날을 기념일로 격하시킨 어리석음까지 범했다. 자기 나라 글을 이렇게 홀대하고 있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서 우리말고는 없을 것이다.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기에도 우리는 한글의 강습과 보급에 목숨을 걸고 힘을 쏟았다. 그러나 이른바 문화의 세기라는 오늘날 한글이 오염, 훼손돼 간다면, 또 정부가 이를 방치한다면 민족적 죄업임을 면할 수 없다.

우리 글은 우리 말과 상통한다. 국토분단 반세기를 넘기면서 같은 글, 같은 말을 사용하면서도 적잖은 말들이 번역 없이는 뜻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남한말과 북한말 사이에 차이가 난 것도 심히 안타까운 판국에 한글 표준어가 외래어·은어·속어 등에 밀려 거리의 간판들에서조차 푸대접을 받는 현실은 더욱 서글픈 일이다.

예를 들기도 민망하지만 ‘불타는 XXX에 OOO 조개들’ ‘골때리네 △△△’등 한국어, 한국말이 저질화돼 가고, 여기에다 인터넷 채팅이나 휴대폰 문팅 등에 등장하는 소위 ‘외계어’는 황당하기 짝이 없다. ‘즐팅(즐거운 채팅)’ ‘냉텅(내용 없음)’ ‘e렇퀘글쓰능高★로 나뽀게생각안훼(이렇게 글 쓰는 거 별로 나쁘게 생각 안해)’ 등이 도대체 어느 나라 글인가.

문제는 종이보다 컴퓨터 자판에 익숙해지는 청소년들의 우리 글 , 우리 말에 대한 사랑 결여다. 우리 글을 다 깨우치기도 전에 외계어를 배운 일부 어린이들이 원고지나 공책에 글을 쓸 때 은어와 외래어를 정상적인 것 처럼 알고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글, 우리 말 표준어는 물·공기와 같아서 일단 파괴·훼손되면 복구하기가 어렵다. ‘우리 글·우리 말은 교과서에만 있다’는 자괴감을 없애려면 정부는 물론 방송계·언론계·교육 당국의 심각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환원하는 ‘한글 사랑 마음’을 국가가 먼저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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