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사원 우대론

스포츠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의 차이는 하늘과 땅과 같다. 은메달이 수십개라도 등위(等位)로는 금메달 하나를 따르지 못한다. 이는 서구의 챔피언십이 가져온 인식이다. 동양에서도 물론 정상 지상(至上)의 관념은 별 다름이 없다. 그러나 2인자를 인정하는 차상(次上)의 순위가 서구보다 뚜렷하다. 이것이 서구적 인식과 동양적 관념의 차이다. 한고조 유방을 도운 소하, 모택동을 도운 주은래가 이래서 유방이나 모택동 보단 못하지만 그래도 빛난다.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씨는 생전에 신입사원 모집에서 필기시험의 수석은 무조건 불합격 시켰다는 일화가 있다. 두뇌가 총명한 것만 믿어 인간미는 없을 수 있을 것으로 본 해석이 가능하다. 하긴, 시험꾼이 있다. 지지대子가 전에 근무했던 신문사에 수석합격한 재원이 있었다. 몇달 뒤에 D일보에 다시 응시하여 역시 수석합격 하였다. 한동안 외국 특파원으로 지면에 이름이 오르 내리더니 그만 두었는 지 기명 기사를 못본 지가 꽤 오래 됐다.

얼마전에 어느 중앙지에 흥미있는 기사가 실렸다. 미국의 기업에서 A급 사원들 보다는 B급 사원을 더 챙긴다는 것이다. A급은 머리가 좋으므로 회사가 위기에 부딪히면 곧 바로 다른 직장을 찾아 떠나지만 B급은 묵묵히 회사를 지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B급 사원의 특징을 그대로 옮기면 ‘승진에 목숨 걸지는 않지만 도전하는 일을 원하고, 회사에서 신경 쓰지 않아도 별로 개의치 않고, 외교적이지 않지만 정직하고, A급과 달리 권력과 지위와 돈을 삶의 목표로 삼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물론 A급이 필요 없는 건 아니다. 필요하다. 다만 이는 동양 전래의 잠언인 ‘재승덕’(才勝德)을 경계하는 것으로 받아 들이면 된다. 재주가 지나쳐 덕을 흠집 입히는 것을 옛 동양인들은 삼가야 할 인간의 도리로 알았다.

챔피언십을 추구하는 서구의 미국 사회에서 차상의 B급에 대한 동양적 관념을 새롭게 인식하는 것은 매우 이채로운 현상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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