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로병사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떨면서 힘겹게 아주 힘겹게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사고능력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파킨슨병’ 환자의 전형적 증상이다.

파킨슨병은 그동안 뇌중풍, 치매 등 노인성 퇴행성 질환으로 오인돼 왔다. 파킨슨병은 서서히 근육이 굳으며 마비현상이 나타난다. 팔다리가 떨리는 수전증의 경우 주로 밥을 먹거나 글을 쓰는 등 동작을 할 때 나타나지만 파킨슨병은 가만히 있을 때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

뇌의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도파민’이 부족해 병에 걸린다는 사실 외에 뚜렷한 발병 원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완치는 불가능하지만 조기에 발견할 경우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어느 정도 방지는 할 수 있다고 한다.

‘엘도파’외에 여러 약이 개발되고 몇 년 전부터는 ‘심부대뇌자극술’이란 수술요법이 개발됐다. 태아의 신경세포를 이식하는 수술법도 있으나 윤리적인 문제와 공급량 부족으로 사실상 시행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문제는 파킨슨병이 국내에서도 1천명당 1명꼴로 걸려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65세 이상 노인의 경우엔 100명당 1명꼴로 급증한다니 보통 무서운 병이 아니다.

불교에서는 인생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네가지 고통(四苦)’을 ‘생로병사(生老病死)’라고 하였지만, 급작스러운 사고로 타계하는 것 보다 그래도 생로병사가 인간의 순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젊은 시절 중병에 걸려 목숨을 잃는 사람에 비하면 나은 편이겠지만 늙어서 각종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세기의 성인(聖人)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1990년대 중반부터 파킨슨병을 앓아 왔다. 관절염까지 겹친 고통을 겪으면서도 복음을 전파하는 교황이 10월 16일 재위 25년, 은경축(銀慶祝)을 맞았다. 교황은 25년동안 102차례의 해외 사목활동에 나서 129개국을 순방했다. 1984년엔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83세의 교황이 지금 죽음에 임박했다는 외신이 들려 온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던가. 생로병사 앞에서는 교황도, 제왕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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