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산의 아침/중국을 제대로 알자

초이졘(崔建). 나이 서른아홉살. 직업 로커. 출생지 중국 길림성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 옌지(延吉). 혈액형 B….

이쯤 얘기하면 록음악을 즐기는 독자들이라면 누군지 언뜻 연상될듯 싶다. 중국 젊은이들에게 ‘비틀즈’ 이상으로 추앙받는 전설적인 로커. 찢어지는듯한 전기기타와 무너질듯한 드럼소리를 배경으로 악마의 절규같은 목소리로 사회를 질타하는 노랫말이 트레이드 마크다. 절대로 TV 등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철저하게 민중들 앞에 서서 라이브 콘서트만 고집한다. 그래서 늘 신비의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얼굴을 제대로 봤다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그런 면에선 영국의 엘튼 존을 닮았다.

한낱 대중가수일뿐인 인물에 대해 이처럼 장황한 설명을 늘어 놓는 까닭은 단 한가지다.

분명 우리말을 쓰는 조선족인데도 중국정부는 절대로 그를 조선족이라고 말하질 않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어째서 중국정부는 그를 한족(漢族)을 제외한 40여 소수 민족 가운데도 소수인 조선족 출신이란 점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중국정부는 요즘도 그가 단지 조선족자치주에서 태어났을뿐 엄연한 중국 사람이라고 애써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지’최근호에 초이졘을 소개하는 기사에도 그가 조선족이란 표현은 한마디도 없다.

이처럼 서두를 지루할 정도로 길게 끄는 까닭은 사실은 중국의 대중음악, 특히 록음악을 소개하기 위함이 아니라 중국정부의 우리 역사 왜곡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우린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해서만 촉각을 세우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종군위안부건부터 더 거슬러 올라 가면 백제가 자신들의 식민지였다는 ‘임나일본부’ 등에만 반박해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중국에선 이보다 더 거대한 왜곡이 꿈틀거리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구려라는 왕조는 거란이나 여진, 말갈 등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변방 역사라고 주장하는 점이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얘기들은 수두룩하다. 기자가 중국에 체류할 당시 산둥성(山東省) 웨이하이(威海)항으로 장보고 역사탐험단 대학생들이 입국했었다. 이들은 ‘장보고 역사 탐험’을 알리는 깃발을 높이 세우고 페리호에서 내렸었다. 그러나 이들의 착륙은 중국 공안(경찰)들에 의해 저지당했다. 장보고란 통일신라시대 인물을 중국정부는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설명하면 ‘장보고’란 인물이 중국인들은 물론 조선족들에게 알려지는 점을 꺼렸기 때문이다. 당시 국내 신문은 이 사건을 단 한줄도 보도하지 않았었다. 들리는 말로는 중국정부가 우리 정부에 대해 외교채널을 통해 보도 자제를 요청했다는 후문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들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들이 자주 찾는 백두산을 중국인들은 창바이산(長白山)이라고 부른다. 어쩌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백두산을 올라 가면서 ‘백두산’이라고 부르면 중국인 가이드들로부터 눈총을 받기 일쑤다. 세계지도에도 백두산은 없고 창바이산만 있다. 고구려 광개토왕 업적을 기리는 비석은 훼손된 채 방치되고 있기도 하다. 중국인들의 역사 왜곡 현장은 이밖에도 숱하다.

초이졘, 아니 최건도 개인적인 자리에서 자신이 조선족이 아니라 중국인으로 불리는데 대한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선 철저한 중국인이고 북경어를 쓴다. 단 한마디도 조선말을 쓰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중국은 일본보다 더 우리를 괴롭혀온 민족이다.

그런데 근세기에 들어 와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되면서 우린 이 사실을 잊고 살고 있다.

해방이 되고 코흘리개들도 흥얼거렸다던 노래말이 새삼스럽다.

“일본 사람 일어선다. 중국 사람 믿지마라….”

/허행윤 제2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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