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과외

조선의 왕세자는 3정승을 비롯한 당대의 학자들에게 개인 교습을 받았다. 학습에 필요한 시중을 드는 하급 관리를 거느렸으며, 교육에 필요한 서책을 관리하는 장서각 관리를 따로 두었다. 오늘 날로 말하자면 20명의 과외 교사, 39명의 학습 도우미, 13명의 개인 사서를 둔 셈이다.

왕의 맏아들인 ‘원자(元子)’의 교육은 왕위에 오르기까지 계속됐다. 보양청과 강학청에서 담당한 어린 원자 교육은 ‘천자문’, ‘동몽선습’ 등 경서 학습 뿐만 아니라 음식과 옷차림을 보살피는 일까지도 포함했다. 아침에 일어나 왕실 어른께 문안을 올리고 저녁에 잠자리를 보살피며 식사를 살피는 게 기본이었다.

행사에는 반드시 전례(典禮)가 따랐다. 어린 왕자가 스승을 처음 만나는 상견례, 강의를 시작할 때의 개강례, 성균관에 가서 사부에게 교육을 받는 입학례 등을 올렸다. 국가 행사가 있으면 국왕을 수행하여 국가 전례를 익혔으며 외국 사신이 왔을 때는 국가를 대표해 손님을 접대했다.

왕자의 일과는 수험생과 마찬가지로 아침식사를 하고 바로 조강에 들어갔으며 낮과 저녁에는 주강과 석강, 수시로 관리를 불러 공부하는 소대(召對), 밤중에 침실로 불러 공부하는 야대((夜對)가 있었다. 여기에다 수시로 경서에 대한 지식을 평가하는 구술시험을 봐야 했고 닷새에 한번은 배운 내용을 모두 점검하는 문제은행식 시험을 봐야 했다.

원자가 세자로 책봉되면 본격적인 제왕수업을 위한 세자시강원이 설치됐다. ‘효경’과 ‘소학’을 쉽게 풀어 쓴 ‘효경소학초혜’나 역대 국왕의 행적 가운데 모범이 되는 사례를 모은 ‘조감’등 특별 편찬된 책을 교재로 택했다. 친히 밭을 가는 친경례와 누에를 치는 침잠례 등을 통해 백성의 삶 체험에도 동참했다. 왕세자의 신분으로 왕의 업무를 대신하는 대리청정이 왕세자 교육의 마지막 코스였다 .

그러나 왕세자들이 모두 훌륭한 왕이 되지는 못했다. 지도력 부족도 원인이겠으나 올바르지 못한 인성탓도 있었다. 대통령이 왕은 아니지만 한국에 성공한 대통령이 없다는 것은 나라의 불행이다. 국민이 신뢰하는 지도력과 반듯한 인성을 갖춘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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