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무너지는 性

세상 망징패조가 들었다. 정치판은 배반과 음모를 일삼고. 사회윤리와 공공도덕은 시궁창으로 떨어졌다. 性타락은 특히 더 더욱 극심하다. 원조교제, 노래방도우미, 주부 알몸 채팅 등이 자고 나면 독버섯처럼 번지더니 이제 동물들도 상상할 수 없는 ‘스와핑’까지 등장했다.

돈 많고 유식한, 소위 잘 나간다는 인사들의 집단 스와핑 사실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이후의 사회 반응이 그야말로 가관이다. 어이가 없다. 천만 뜻밖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비해 조금 더 성의식이 개방돼 있을 뿐이다. 아내와 상대방의 동의를 얻었는데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 아니냐?” “인신매매, 매춘 등 스와핑보다 심각한 문제도 많다. 왜 돈을 주고 성을 사는 관행은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가. 단란주점이나 룸살롱에서 돈 주고 매매춘하는 것은 정상이고 맘이 맞는 사람끼리 합의로 즐기는 것은 죄악이냐?” “배우자를 속이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국가와 언론이 간섭인가. 매매춘이 일상화한 나라에서 고작 몇 명이 스와핑이라는 합의섹스를 가진 것에 언론이 난리치는 게 아이러니다.”

“스와핑의 고발자는 누구인가. 고발자와 언론이 사생활을 훔쳐보는 변태들이다. 이런 식으로 사생활 침해의 명분을 늘려 가는 것은 안될 일이다”

스와핑을 즐긴 사람들은 거의 이런 사고를 가졌다. 개인의 성취향이니 간섭하지 말라는 주장이다. 개인의 행복추구권이라고 강변한다.

사람 웃기는 별 모임이 다 있지만 ‘짜릿한 경험을 추구하는 모임(짜경모?)’ 등과 같은 스와핑 모임에 참여하는 부부가 6천여쌍에 이른다는 것도 졸도할 노릇인데 스와핑을 기대하는 미혼 연인들마저 있다는 것은 정말 참담하다. 짜장 종말이 다가온 모양이다.

스와핑이 무엇인가. 좁은 의미로는 두쌍 이상의 부부가 배우자와 함께 한자리서 혼음하는 것을 뜻한다. 넓은 의미로는 부부끼리 성행위 파트너를 바꾸는 것을 모두 포함한다. 완전히 미친 짓이다.

스와핑은 고대 각국에서 종교문제로 존재했었다. ‘플라토닉 러브’ 나 ‘이데아’로 유명한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도 실은 넓은 의미의 스와핑주의자였다. 그는 ‘철인(哲人)도 가족 때문에 공평무사한 정책을 펼치지 못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부인을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궤변이다. 동의 받을 수 없는 망상이다. 스와핑이 현재 정신질환으로 분류돼 있지는 않지만 정신질환자들의 광란이다. 성도착증이다. 성도착증의 특징 중 하나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성적 쾌락에 도달하는 행위다. 부부 교환 성행위 자체가 이미 상식을 벗어난 짓이다.

비정상적인 쾌락을 찾기 위한 호기심은 결국 자신과 가정을 해친다. 사회질서도 무너 뜨린다. 도덕적 차원을 넘어서 법적 차원으로 제재를 가해야 한다.

통탄할 일은 스와핑 경험자가 아닌데도 부부간에 합의된 개개인의 취향인만큼 존중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다. 공권력으로 다스릴 일이 아니며 도덕적으로만 비판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 부부가 스와핑을 하든 집단섹스를 하든 문제가 되지 않으며 스와핑을 크게 보도하는 신문·방송이 ‘관음증언론(smtts)’이라는 스와핑 옹호자들이 적지 않은 점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거대한 로마제국 멸망의 원인이었던 목욕탕을 전수하여 스와핑을 일궈내는 PC방을 건설하고 있는 위기상황에 처했다.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통신의 발달이 한국사회에 몰고 온 대표적인 폐해가 바로 음란성과 불륜의 만연이다. 스와핑도 인터넷을 통해 성사된다. 음란 사이트의 종류와 수량에서 한국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나라가 돼버렸다.

그렇다면 전염병처럼 스와핑이 만연하는 한국 성타락은 치유 불가능한 중병인가. 불행하게도 비관적이라고 한다. 한가지 방법은 있다. 스와핑 커플들이 우리 사회를 떠나 따로 거주하는 일이다. 말세에 살고 있는 절망적인 느낌이 제발 착각이었으면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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