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를 강타하고 있는 요즘 영화중 ‘황산벌’이라는 작품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앞서 신라의 김유신 장군과 백제의 계백 장군이 지금의 충남 논산시 연산면 5개 리 일대(황산벌)에서 벌였던 치열한 전투과정과 그 속에서 오간 전략 및 대화 등을 각 지역의 사투리로 표현,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이 작품에서 단연 압권은 ‘거시기’라는 용어다. 사전적 정의로 거시기는 ‘말하는 도중에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이 얼른 떠오르지 않을 때, 그 이름을 대신하는 말’이다.
계백은 ‘죽음의 전쟁’에서 두려움에 쌓여있는 병사들에게 ‘거시기하자’며 사기를 북돋아 10배나 많은 신라군과 맞서게 한다. 국가의 운명을 책임진 장군으로서 패할 수 밖에 없는 전쟁에 임한 병사들에게 계백역시 얼른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거시기’밖에.
작금 경기도도 ‘거시기’라고 밖에 할 말이 없는 사안이 있다.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의결해 국회에 제출한 국가균형발전법이 바로 그것이다.
참여정부가 전국을 균형있게 발전시키겠다는 목표를 설정해 추진하고 있는 이 법안에 대해 굳이 반대할 경기도민은 없으나 중국을 비롯해 전세계와의 경쟁에서 그나마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경기도에서 그 무엇인가를 빼내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면 과연 경기도민들은 수용할 수 있을까? 더구나 ‘균형’이란 미명하에 하향 평준화를 정책으로 삼아 경기도만 타 지역을 위해 희생만하라면 정부는 이를 어떻게 설득하겠다는 것인가?
수도권정비계획법이다, 군사보호구역에 상수도보호구역이다, 그린벨트다 등 대한민국에서 시행되는 모든 규제법안을 안고 있는 경기도가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꿋꿋하게 국가발전의 틀을 다져온 경기도가 아니었던가.
칭찬을 해주지는 못할 지언정 갖고 있던 것을 빼앗으면 울지않을 아이가 어디있겠는가.
엊그제 산자부의 모 국장과 도청의 모 실장이 전화통을 잡고 ‘법안이 국회에 상정됐는데 경기지역 출신 의원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으니 도에서 나서 이들을 좀 자제시켜 달라’, ‘그동안 경기도의 설득을 외면한 법안이 국회에 상정됐는데 어떻게 그런 주문을 할 수 있는가’라며 장시간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목격한 바 있다.
참으로 손학규 지사를 비롯한 도 관계자들은 더이상 할 말이 없는듯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연초 검사들과의 대화과정에서 ‘이쯤되면 막하자는 것이지요’라며 말문을 막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쯤되면 도내 정치권과 경제단체, 도민들이 ‘한번 거시기하자’고 나서는 것도 무리가 아닌 듯 싶다.
문민정부나 국민의 정부 등 과거 정권하에서도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재정이나 조세제도 등 ‘보이지 않는손’을 통해 수도권을 제외한 타 지역에 더 많은 지원을 해 왔음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굳이 참여정부들어서만 수도권과 지방이라는 이분법적 개념을 도입, 경기도로 하여금 ‘거시기’하게 몰아가는 진정한 속내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경기도민들은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는 손’으로 바뀌면서 어쩌면 국가균형발전법이 내년 ‘총선용’이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정일형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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