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미리내 성지

대부분 종교의 탄생과정에는 박해와 탄압의 역사가 숨어 있다. 그래서 종교는 순교자의 죽음을 거름으로 꽃을 피운다. 우리나라 종교도 예외는 아니다.

생애의 대부분을 인도 캘커타의 빈민가에서 빈자의 성녀로 살다 간 테레사수녀에 대한 복자(福者)의 반열에 오르는 시복식(諡福式)이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 장면을 얼마전에 TV를 통해 보았다. 자그마치 30만명이 넘는 인파가 운집했다.

시복은 카톨릭에서 신앙이나 순교로 이름이 높은 이에게 복자라는 칭호를 내리고 그를 공경하도록 선언하는 종교의식이다. 성인의 전 단계인 시복을 받은 순교자가 우리나라에도 79위가 있다.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 골짜기에 위치한 미리내 성지에 그를 기념하는 경당이 자리하고 있다. 그곳은 우리나라 최초로 천주교신부가 되었다가 병오(1846년)박해 때 순교한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곳이다.

밤이면 달빛 아래 불빛이 은하수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졌다는 미리내가 요즘 심한 몸살을 앓고 있어 시끄럽다. 세계적인 종교성지 턱 앞에 골프장을 만든다는 것이다. 참 무식한 일이다. 무식(無識)이 무언가. 상식도 없고, 지식도 없다는 뜻이다. 1백여년전에 천주교회당이 설립되어 지금은 25만평의 부지에 한국순교자 103위시성기념 성당, 성 안드레아 김대건신부 묘소와 한국순교자 79위 시복기념 경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제는 축령산 자락에 성지로서의 면모를 뚜렷하게 갖추고 있고 다른 나라 성지에 비교해도 뒤처질 게 없을 정도로 잘 가꿔져 있어 기도와 순례의 성소로서 많은 국내외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성지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곳이 아니다. 종교적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현장에서 신앙의 위대함과 영원함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성지는 주변 환경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심을 달구는 거룩하고 성스런운 땅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몇 해전 이곳은 홍수가 나서 마을과 논밭을 휩쓸어 간 적이 있는 수해위험지역이기도 하다. 수해방지를 위해서 뿌리가 긴 나무를 심어도 될까말까 할텐데 이곳에 뿌리가 얕은 잔디를 심어놓는다면 어찌 될 것인가. 도대체 그런 발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골프장을 허가해 줘 세수(稅收)증대에 얼마나 보탬이 되는 지는 몰라도 오히려 국내외 순례자가 찾아와 평화와 위로를 얻고 가는 세계적인 성지로 만들어 가는 편이 훨씬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엎지른 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훈동.수원예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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