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비자금 수사가 확대되는 가운데 어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는 대국민 사과 회견을 가진 것은 적절하다. “불법자금을 받은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이 잘못된 일”이라며 “모든 허물, 모든 책임은 대통령 후보였던 저에게 있다”면서 사법 책임도 불사할 뜻을 시사했다. 다만 불법자금 인지엔 즉답을 피한 것은 검찰수사가 진행 중임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SK 자금으로 촉발된 대선 불법자금은 정치권의 폭로 공방이 실로 점입가경이다. 민주당이 열린우리당을 겨냥해 포문을 연 128억원의 허위 회계처리 등 4대 의혹을 제기하자, 우리당측은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민주당을 공중분해 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런가운데 김영일 한나라당 전 사무총장 등 전 당직자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될 처지여서, 이 전 총재가 계속 침묵을 지키기엔 부담스러웠을 것으로 대국민 사과의 배경이 관측된다. 이럼으로써 한나라당에 당부하는 것은 제발 물귀신 작전같은 발목잡기의 구태 정치를 버리고 돈 안드는 선거로 불법자금의 부담에서 해방되는 선거법 개정 등 정치개혁 입법의 전향적 자세로 속죄를 보여달라는 것이다. SK 비자금 등 대선자금 수사는 검찰에 맡기고 예의 정치공세 따윈 자제하는 것이 순리다. 검찰 수사는 사회정서에 비추어 아직까진 대체로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다. 지금은 한나라당이 특검이나 투쟁을 입에 담을 계제가 아니다.
이 전 총재를 소환 조사하거나 대선자금 수사를 SK외에 삼성·LG·롯데·현대자동차 등 다른 대기업까지 확대하는 방안 역시 검찰이 알아서 신중히 판단할 일이다. 주목되는 것은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SK로부터 받은 11억원 중 1억원이 노무현 대통령 전 운전사였으며 장수천 대표였던 선 아무개에게 전해진 사실로 미루어 장수천의 관련 여부다. 검찰은 최 전 비서관이 받은 돈이 노 대통령과 어떤 연관이 있는 지를 분명하게 가려 객관화 시켜보여야 수사의 신뢰를 계속 받을 수 있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대국민 사과는 물론 원론적 수준이긴 하다. 하지만 예정했던 출국을 스스로 늦추며 검찰수사를 관망하는 자세는 인정된다. 그럼, 이제는 노 대통령이 뭐라고 말을 해야 할 차례다. 불법 대선자금은 선거의 승패와 무관하게 처리돼야 한다고 보는 것이 국민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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