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적으로 원인이 확실하지 않고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아 후유증이 생길 우려가 있는 병이 희귀병이다. 희귀·난치병 환자들은 병을 천형(天刑)으로 알고 본인들이 걸머지고 간다. 발병 단계에서 치료까지 각종 장벽 앞에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이들중 대부분은 희귀병에 걸린 줄도 모른 채 원인불명의 병으로 알고 체념한다. 50만명으로 추정되는 희귀병 환자 중 1만3천여명만이 희귀병 확진을 받았다.
200여종에 달하는 희귀병의 증세가 뭔지, 비슷한 증세가 나타나면 어디서 진단을 받아야 하는 지에 대한 자료가 없고 그런 시스템이 구축돼 있지도 않다. 희귀·난치병 환자들은 질병으로 인한 고통 못지 않게 엄청난 진료비에 절망한다. 건강보험 보장 범위가 좁아 진료비의 절반 이상을 부담해야 하는 데다 국고 지원 기준도 너무 까다롭기 때문이다.
경추탈골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앓는 딸의 인공호흡기를 떼내 숨지게한 전모씨의 경우 3년간 총 진료비가 1억7천100만원으로 이 중 49%인 8천300여만원이 환자 부담이었다. 전씨는 이 돈을 충당하기 위해 집을 팔아 사글세로 옮겼으며 그래도 부족해 5천만원의 빚을 졌다.
광주(光州)에서 윌슨병을 앓던 아버지(59세)가 같은 병을 앓는 외아들(28세)을 목졸라 숨지게 한 사건도 있었다.
희귀병 환자나 가족을 ‘자살’이나 ‘살인자’의 길로 내모는 데에는 정책 부재, 사회적 냉대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이런 상황에 복지부가 연내에 희귀병 환자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고, 희귀병 전문 홈페이지를 구축해 정보를 공유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키로 한 것은 다행이다. 내년 5월에는 만성병 관리법을 만들어 희귀병 지원 근거를 담는다고 한다.
기왕이면 건강보험 이외에 별도의 재정을 마련해 희귀질환자들에게 의료비 혜택과 장기요양시설을 제공하거나 이런 일을 하고 있는 민간 사회복지시설을 지원·감독하는 ‘희귀질환 관리시스템’을 구축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희귀병은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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