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노무현당'?, '열우당'?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써 선호하는 정당이 없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덩치만 큰 한나라당도, 과거의 당원동지들과 결별한 후 서로 못 잡아 먹어서 이전투구하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도, 교섭단체를 구성 못해 전전긍긍하는 자민련도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한 군데 없다. 아무리 당리당략에 죽고 사는 정당이라고 하지만 유권자가, 국민이 환멸과 연민을 느낀다면 그 정당은 이미 글러 먹은 당이다.

세칭 ‘코미디계의 황제’였던 故 이주일씨가 정주일이라는 이름으로 국회의원 노릇하다가 “정치판에서 코미디 많이 배우고 간다”고 일갈하고 정계를 은퇴한 일도 있지만 요즘의 정치판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웃긴다’는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소위 정치자금을 한 푼도 안받았다고 ‘오리발’을 내밀던 인사들이 검찰에만 끌려 가면 술술 불고 나오니 검찰이 무섭긴 대단히 무서운 모양이다. ‘오리발’도, ‘모르쇠’도 ‘물귀신’ 작전도 코미디감이지만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열린우리당’ 당명 시비는 철부지 아이들의 말장난 같아 유치하다. 그렇다고 기자가 열린우리당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열린우리당’을 줄여서 ‘우리당’이라고 자처하건, ‘열린당’이라고 하건 웬 말들이 그리 많은가. 더구나 공모해서 뽑은 당명 아닌가. 새천년민주당,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이라고 당명을 정했을 때 다른 당이 왈가왈부했다는 소리 못들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국민에게 혼란을 주는 당명”이라며 수정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열린우리당’이 약칭을 수정할 때까지 한나라당은 ‘열우당(劣友黨)’ , 민주당은 ‘노무현당’으로 부르겠다고 했다.

민주당 박상천 대표는 “차라리 ‘표를 주어야 할 정당’이라고 하는 것이 어떠냐”고 말했다. 그래 봤자 열린우리당만 이익을 본다. ‘노무현당’, ‘노무현당’하면 되레 노무현대통령 이름만 귀에 익혀질테고, ‘표를 주어야 할 정당’, ‘표를 주어야 할 정당’이라고 자꾸 말하면 내년 4·15 총선 때 정말 국민들이 표를, 그것도 무더기로 몰아줄 지 모른다.

1963년 정당법이 제정된 이후 정당 이름에 가장 자주 사용된 단어가 ‘민주(29)’였다. ‘국민’ ‘통일’ ‘자유’도 많았다. 정당을 새로 만드는 재주들이 워낙 좋고 비슷 비슷한 당명이 많아 헷갈린다.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현행 정당법 제43조에 ‘유사명칭 등의 사용금지 조항만 있다.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해산된 정당의 명칭과 같지만 않으면 제한할 방법이 없다”고 하였다.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민주당 의원 총회에서 나온 ‘우리당’ 명칭 사용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내자는 의견은 물 건너 간 셈이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 열린우리당을 비난할 때도 우리당이라고 칭해야 하니 부아가 치미는 것은 이해가 간다.

국어사전상 ‘우리’는 ‘자기나 자기 무리를 대표하여 스스로 일컫는 말’ 또는 ‘자기 또는 자기의 동아리를 스스로 일컫는 말’이라고 돼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복수만 지칭하는 게 아니라 단수나 복수에 모두 쓸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를 염두에 뒀는지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이 “기왕 한글로 하려면 ‘열린우리무리’라고 하면 어떠냐”고 했는데 ‘무리’는 욕이 아니다. ‘개똥이’나 ‘돌쇠’라는 이름도 자주 부르면 정겹게 들리는 것처럼 남의 당을 ‘열우당’ ‘노무현당’ ‘표를 주어야 할 정당’이라고 자주 부르면 오히려 친숙해져 이름값만 높혀 준다. 찾아보면 ‘우리’를 앞세운 명칭은 ‘우리은행’ ‘우리문학’ 등 꽤 많다.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이름 시시비비는 코흘리개들이 별명을 부르며 싸움하는 것처럼 유치하다.

이름을 빼앗겨 화풀이 하는 것 같은 당명 시비는 이제 끝내라. 정작 닥친 중대사는 이 당, 저 당 할 것 없이 검은 돈 받은 사실을 모두 자백하는 일이다. 거기에 상응하는 처벌 받고 앞으로 받지 말라. 깨끗한 정치, 올바른 정치로 승부를 걸어라.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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