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로(新作路)라 하였던 그 무렵의 국도 등 대로는 모두 사리(砂利)도로였다. 아스팔트가 아닌 자갈 모래를 깔아 도로를 유지했고, 그러므로 해마다 인근 주민들이 부역 나와 자갈 모래를 깔곤했다. 이 신작로 위를 달렸던 게 포장마차였다. 아마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먼지를 뽀얗게 일으키며 달렸던 포장마차를 기억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당시엔 택시는 고사하고 버스도 아주 드문 때여서 말 방울을 달랑거리며 말이 끄는 이런 포장마차를 탈 수 있는 것도 여간한 호사가 아니였다. 마부가 말 채를 휘날리며 끄는 포장마차엔 대여섯명의 승객이 탈 수 있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포장마차라고 하면 미국의 서부영화에 나오는 애리조나 마차를 연상하겠지만 우리나라에도 포장마차가 큰 교통수단이던 시절이 있었다.
포장도 없는 가게 술집이 ‘포장마차집’이라는 간판을 단 것을 더러 보는 건 포장마차가 지닌 어떤 낭만성 때문일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말 발꿉 소리에 맞추어 몸이 흔들기며 달리는 승차감은 그런대로 멋이 있었다.
‘포장마차’가 된서리를 맞고있다. 밤이면 말도 바퀴도 없이 포장만 친 ‘포장마차’가 술장사, 음식장사를 일삼고 있어 단속 대상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인도, 심지어는 차도까지 침범해 가며 의자를 수십개씩 늘어놓고 불야성을 이루는 성업으로 호황을 누린다. 이를 단속하는 게 생존권을 위협한다지만 단속해선 안될 진짜 생계형 노점상은 따로 있다. 가겟세도 안내고 세금도 안내면서 가게 이상으로 재미보는 기업형 포장마차가, 글쎄 단속 대상에서 보호받아야 한다고는 보기 어렵다.
기업형 포장마차의 단속 시비는 서울의 이야기이지만 서울에 국한하는 것만은 아니다. 수원 등 도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단속도 단속이지만 포장마차 하는 이들의 자제가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 옛날 진짜 포장마차가 알면 라이센스를 요구할 일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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