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事必歸正’ 전말서

2001년 3월 12일 당시 심재덕(沈載德) 수원시장이 뇌물수수혐의로 구속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럴 리 없다”고 일축했다. 수원문화원장으로 8년동안 봉사하면서 ‘화성행궁복원추진위원회’ 결성, ‘한 여름밤의 음악축제’, ‘수원천 살리기운동’등을 통해 문화예술발전에 진력해온 사람이, 특히 ‘동서철강’이라는 기업을 경영하는 막강한 재력가가 무엇이 아쉬워 2억3천만원에 불과한, 그것도 ‘검은 돈’을 받았겠느냐고 믿지 않았다.

1995년 6월27일, 그리고 1998년 6월4일 실시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연속 당선한 沈시장이 유력한 정당에 가입하지 않는다 하여 소위 ‘괘씸죄’를 적용했다는 음모론도 나왔었다.

그러나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9천900만원 가진 사람이 1억원 채우려 한다”면서 “수원지역의 모든 건축공사장에 동서철강의 철근이 사용된다”는 말을 퍼뜨렸다.

수원의 N주택과 S건설이 아파트 인·허가와 관급공사 편의를 봐 달라고 1997년 沈시장의 비서에게 2억원을 주었다는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횡설수설하긴 했지만 비서들이 그렇게 진술했다.

N주택으로부터 2억원, S건설로부터 3천만원의 대가성 뇌물을 받은 혐의로 沈시장은 2001년 7월6일 징역 12년, 추징금 2억3천만원의 검찰구형을 받았고, 수원지방법원은 2001년 7월30일 징역 5년을 선고했다. 沈시장은 ‘사필귀정’을 외치며 결백을 주장하고 항소했으나 8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항소심 계류 중 2001년 10월27일 서울고등법원에 의해 보석으로 석방돼 시장직무에 복귀했으나 세상 인심은 환영과 의혹, 반반이었다.

“죽어야만 결백이 밝혀질 수 있다면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라던 沈시장이 2002년 6월13일 수원시장 선거에 또 무소속으로 세 번째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뇌물시장’이라는 오명이 낙선의 원인이었다.

2002년 10월9일 서울고등법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후 심재덕 전 수원시장은 복부에 자해를 가했다. 사람들은 沈 전 시장의 자해를 통분의 표출로 비유하며 동감을 표시했다. 지지자들은 6·13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전 무죄판결을 받았다면 고배는 마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沈 전 시장의 가훈이기도 한 ‘사필귀정’은 지난 11월 27일 완전히 증명됐다. 대법원이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것이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지난 97년 8월 수원 N주택 대표 박모씨로부터 자신의 비서인 심모씨 등을 통해 받았다는 2억원의 대부분이 비서인 심씨의 임대보증금과 대출금 상환, 자동차 구입 대금으로 사용된 것으로 드러나는 등 여러 정황상 관련자들의 진술 내용이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또 “지난 98년 5월 피고인에게 현금 3천만원을 전달했다고 진술한 S건설 사장 최모씨는 당시 탈세혐의로 수사를 받던 중 궁박한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허위진술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최씨의 여비서인 최모씨도 최씨의 허위진술에 맞춰 진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무죄가 확정된 날 심재덕 전 시장은 “법은 반드시 진실을 밝혀줄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일부 부도덕한 건설업체로 인해 실추된 수원시민의 명예에 대해서는 반드시 심판을 받도록 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무려 2년9개월의 법정다툼은 ‘사필귀정’으로 끝났지만 구겨진 자존심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수원정가에는 벌써부터 심 전 시장의 내년 총선과 3년 후 시장선거 출마설 등 정계복귀 얘기가 나돌고 있지만, 음모와 협잡이 난무하는 정치판에 무엇하러 나가는가. 문화원장 시절로 되돌아갔으면 좋을 것 같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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