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당 빚 3천만원이 의미하는 것

빚은 없는가. 설령 저축을 못했다손 치더라도 빚이 없다면 그만으로도 다행한 안정 가계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가구당 빚이 2천921만원으로 사상 최대에 이르는 가계신용 동향은 참으로 우려되는 바가 크다. 금융권 대출과 신용카드 외상구매 등을 합친 가계신용 잔액이 지난 3·4분기 중 8천613억원이 늘면서 9월말 현재 439조9천481억원으로 집계됐다는 것이다.

문제는 확대 재생산을 위한 자본이 되지 못하고 단순 소비에 그친 악성 채무란 데 있다. 가계대출이 원래 소비의 속성이 강하긴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게 심화한 것으로 진단된다. 또 이같은 가계빚 중 상당액은 사실상 상환이 불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

신용불량자가 이미 360만명을 돌파했다. 발표 때마다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는 신용불량자 수는 앞으로도 기록을 경신해 갈 것으로 전망된다. 사상 최대의 가계빚, 사상 최대의 연속 신용불량자 양산은 금융불안의 적신호다.

금융권이나 카드사가 이에 위기감을 갖고 강제 회수에 나설 수가 있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압류 소동과 파산이 속출한다. 이러고도 가계빚이 제대로 회수될 것으로 보기에는 지극히 어렵다. 물론 빚을 쓴 빚쟁이의 책임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결제 능력이 없는 빚쟁이의 무분별을 탓하는 것은 사태 해결에 도움이 안된다.

신용사회의 불안은 곧 사회생활의 불안을 야기한다. 카드빚 범죄를 너무 많이 본다. 일가족 자살이 잦다. 신용불안이 사회위기로 파급되는 것은 주목해야 할 현상이다.

이정재 금융감독위원장은 엊그제 가진 금융경영인 조찬 강연에서 주목되는 말을 했다. “가계부채 상환 압력과 소비둔화를 감안하면 본격적인 경기회복 진입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가계빚의 대부분은 서민층이다. 빚쟁이의 실질소득이 늘어야 빚을 갚을 수가 있는데도 그럴 조짐은 아직 멀다. 오늘의 가계빚 문제엔 정부의 책임이 크다. 그래서 내놓는다는 게 기껏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는 신용불량자 구제책으로 금융권의 외면을 받고 있다.

가계빚 연체는 가정 뿐만이 아니고 경제불안, 사회불안의 불씨다. 연체자의 도덕적 긴장과 함께 상환 편의를 도울 실효성 있는 대책이 뭔가를 정부 당국과 금융권은 지금이라도 거듭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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