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서울과 대전의 국립묘지에 안장된 일반인은 손기정, 주시경, 안익태씨 등 저명인사 74명이다. 이중 과학기술자는 해방 후 후학 양성에 정성을 쏟은 화학자 이태규 박사가 유일하다.
미국의 경우 많은 과학자·탐사자들이 국립묘지에 묻혀 있다. ‘미국 민주주의의 성지(聖地)’로 일컬어지는 워싱턴의 알링턴 국립묘지는 안장된 극지 탐험가 숫자가 대통령 숫자보다 많다.
안장자 중 전직 대통령은 27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과 35대 존 F 케네디 등 두 명 뿐이지만 탐사가는 1909년 북극점을 발견한 로버트 피어리와 매튜 헨슨, 1881년 극지에서 2년간 보급 없이 생존했던 아돌퍼스 그릴리 등 7명에 이른다. 임무 수행 중 사망한 우주비행사 16명도 함께 안장돼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립묘지에는 친일 행적 등으로 논란의 대상이 돼 온 인사들도 적잖이 묻혀 있다. ‘유공 군인 및 순직 경찰관, 국장 또는 국민장으로 장의된 사람’ 등으로 안장 대상을 규정한 ‘국립묘지령’이 무색하다.
국립묘지 안장자 중 친일 행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는 이승만 정권 시절 육군 특무대장을 맡았던 김창룡씨다. 일제 때 일본 헌병대 밀정으로 항일 독립군 조직을 적발하는 반민족 행위를 했고 백범 김구 선생 암살 배후 혐의를 받고 있음에도 순직으로 처리돼 대전 국립현충원에 묻혔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파’로 분류한 전 고위층 인사들도 국가 유공자 제1묘역과 제2묘역, 애국지사 묘역 등에 다수 묻혀 있다.
이렇게 친일파도 묻히는데 민주화 운동에 기여한 전태일 열사, 남극 세종과학기지에 파견됐다 최근 불의의 사고로 숨진 전재규 연구원 같은 많은 민간인들이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하는 ‘국립묘지령’은 개정돼야 한다.
엊그제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총리실을 중심으로 관계 기관들이 모여 국립묘지 운영기준, 향후 방침, 의사자 국립묘지 문제 등을 포괄적으로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은 늦은 감은 있지만 적절한 조치다.
이참에 국립묘지 관련 업무를 국방부에서 국가보훈처로 옮기는 일도 논의돼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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