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은 열반의 계절인가. 전국 산사에서 잇따라 열반송이 겨울산의 적막을 깨우고 있어 중생들을 숙연케 한다. 이번 겨울에만 한국 불교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큰스님 여섯 분이 입적하여 불자가 아니더라도 지나온 삶의 자취를 돌아보게 한다.
반세기 이상 장좌불와(長坐不臥·눕지 않고 앉아서 수행)와 일일일식을 한 청화 스님을 시작으로,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동국학원 이사장 정대 스님, 태고종 종정 덕암 스님, 조계종 원로의원 덕명 스님, 조계종 종정을 지낸 통도사 방장 월하 스님에 이어 백양사 방장 서옹(西翁) 스님이 지난 13일 92세에 앉은 채로 열반해 스승 만암 스님에 이어 좌탈입망(坐脫立亡)의 진기록을 남겼다.
서옹 스님은 한달전쯤 성륜사 조실(祖室) 청화 스님의 열반 소식을 듣고 “내가 먼저 가야하는데 청화가 먼저 갔군! 나도 갈 때가 됐어”라는 말과 함께 “임제 스님이 크게 외치니 밝은 눈이 사라지고 / 덕산 스님이 몽둥이로 내리치니 교외별전이 끊어지도다 / 이렇게 와서 이렇게 가니 / 백학의 높은 봉우리에 달빛이 가득하도다”하고 자필 임종게까지 쓴 뒤 떠날 채비를 했다고 한다.
서옹 스님은 입적 직전까지 시자 스님들에게 30여분간 법문을 들려 주었고, 열반 하루 전에도 상좌 스님들과 법담을 나누었다.
백양사 주지 두백 스님은 “서옹 스님은 ‘이제 가야겠다’며 혜권 강사스님을 찾았고 강사스님이 방문 여는 소리와 함께 입정한 그대로 좌탈입망 하셨다”고 입적순간을 전했다.
올 초부터 뭇 중생들에게 깨달음의 죽비를 내리치던 해방 이후 선승 1세대들이 차례로 열반송을 남기고 이승의 옷을 바꿔 입자 선맥계승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특히 이 스님들은 조계종의 5대총림 방장과 조실을 지낸 고승들이어서 이들이 비운 자리는 더욱 넓고 크다.
지난 3월말 입적할 때까지 조계종립 특별선원인 경북 문경 희양산 봉암사의 조실로 철저한 수행을 하며 산문을 지켜온 서암(西庵) 스님은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라는 열반송을 남기고 홀연히 떠났다.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 월하 스님은 시골 할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아무리 어린 사람에게도 말을 낮추지 않았다.
최고령 조계종 원로의원이었던 고송 스님은 파계사 조실로 존경을 받아 왔고, 청화 스님은 ‘살아 있는 부처’로 추앙을 받았다.
1세대 선승들로는 현재 조계종 종정인 가야총림 방장 법전(法傳), 서울 칠보사 조실 석주(昔珠), 화계사 조실 숭산(崇山), 덕숭총림 방장 원담(圓潭) 스님이 있다.
이들의 뒤를 ‘북송담 남진제’로 알려진 인천 용화사 선원장 송담(松潭), 부산 동화사 해운정사 조실 진제(眞際), 봉화 각화사 선원장 고우(古愚), 영천 은해사 기기암 선원장 적명(寂明), 봉화 축서사 주지 무여(無如), 제주 남국선원장 혜국(慧國) 스님 등이 잇고 있다.
일반인들도 열반한 스님들의 빈자리를 누가 메우느냐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유는 불교가 차지하고 있는 국민의 신앙심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열반한 스님들의 49재가 남아 있어 아직 표면화되진 않고 있지만, 종정(태고종)과 조계종 5대 총림 중 방장 2자리, 동국학원이사장 자리 등을 놓고 물밑작업이 한창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지 임명권을 가진 방장 자리는 사중(문중) 회의에 의해 정해지고, 태고종 종정은 내년 2월 소집될 원로회의의 추천을 거쳐 중앙종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방장이나 종정은 감투가 아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천만분의 하나라도 불교 지도자 자리를 놓고 추호라도 잡음이 생긴다면 열반한 큰스님들의 공덕과 수행에 누를 끼치는 일이다.
큰 별이 진 뒤에는 큰 별이 떠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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