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회색빛이었다. 하늘도, 땅도, 건물도, 사람까지도…. 내 머릿속에 막연히 자리잡고 있던 우울하고 칙칙한 회색의 이미지가 마치 벌레로 되살아나 내 온몸으로 기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이것이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갈등과 분노, 회한과 애증의 인큐베이터인 평양에 첫 발을 내딛는 소감이다. 숙소로 향하는 버스안에서 소위 안내원이란 북쪽 젊은이의 ‘남쪽에서 오신 선생님들 북쪽사람들 모두 새빨갛고 머리에 뿔이 난 줄 아셨을텐데, 직접와서 보시니까 어떻습니까’ 그 시니컬한 미소를 띈 첫 멘트는 소위 그들이 말하는 미제 앞잡이 부르주아 집단의 기선을 제압하려는 프롤레타리아의 선전포고와도 같았다.
4박5일 일정동안 나는 끝없이 이어지는 가치충돌의 파열음 때문에 늘 ‘이명증’에 시달려야만 했다. 차창밖의 풍경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30년쯤 되돌아간 느낌이었고, 역사적 사실 보다는 그 역사적 사실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셨다는 (?) 수령님과 장군님을 열심히 칭송하는 유적지 강사들의 설명은 힘겨운 인내심을 많이도 요구했다.
그러나 그곳도 역시 사람 사는 곳임엔 틀림이 없었다. 유치원에서 와락 품에 안기던 어린아이의 응석과 살 내음, 묘향산에서 소풍왔다 만나 내가 주던 사탕을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받던 12살 소녀의 새까만 눈동자는 가슴 시린 예쁨이었다. 보현사에서 환갑기념으로 구경왔다던 중 늙은이의 인생을 달관 한듯한 한마디 ‘아무러면 어떻소. 북이나, 남이나 거저 한평생 사는 것 아니겄소’는 이데올로기가 비집을 틈이 없었다.
그들이 우리와 같은 말과 글과 역사를 공유하는 한 민족이라면 모두 죽는 대립보다는 다같이 더불어 사는 방법을 택하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위정자들에 의한 통일은… 글쎄, 요원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민초들이 하기 쉬운 것부터 해야만 할 것 같다. 우리가 그들을 무시하지 않고 내게 덜 필요한 것들을 깨끗이 해서 정성들여 그들에게 전해 준다면 고마워 하며 마음을 열지 않을까. 감히 ‘북쪽 주민 돕기 시민운동’을 전개키로 하였다.
평양 방문의 그 소중한 경험을 사장시키기엔 방문단원 모두의 이성이 용납하지 않아서 마음을 모으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동참했으면 참 좋겠다.
/김석일.북녘동포사랑 시민운동 본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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