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성탄은 왔다. 종교인이든 아니든 저마다 성탄을 즐기고 있다. 예수와 관계없는 사람이 어떤 목적으로 성탄을 즐기든 이에 토를 달고 싶진 않다. 교회마다 성탄 축하곡을 부르고 선물을 주고받고 그야말로 축제인 것 같다. 그런데 왜 기독교가 성행하면서, 기독교 문화가 번성하면서 교회는 엄청 늘어나는데 종교지도자들은 더 좋은 교육을 받고, 더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육성되는데, 사회는 더 병들고 사람마다 마음은 더욱더 공허해져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교회에는 이 땅에 오신 예수의 처음 그 모습 그대로 계시는 걸까. 지금도 교회에서는 성탄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데, 이 땅의 어딘가 수많은 곳에서는 아침 점심 저녁을 라면으로 때워 라면가락처럼 누렇게 고들고들 시들어가는 아이들이 동서남북 곳곳에 퍼져있다. 그래도 희망이나마 품고 기약도 없는 내일을 꿈꾸는 수많은 이 땅의 아이들이 있는데, 성탄을 물질적 축제로 내 마음의 위안을 받는 축제로만 보내는 교회를 보면 진정 그곳에 2000여년 전에 사랑을 품고 마굿간에 오신 예수가 그대로 계신지 궁금하다.
대장간에 망치가 없듯이 교회에는 참사랑의 예수는 없고 종교지도자만, 교리만 있는 것이 아닌가. 혹시 예수가 있다 해도 예수는 십자가에서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인류구원을 위해 죽으셨는데 교회는 가시면류관 대신 금관을 씌워 놓고 교회 속에서만 예수를 즐기는 것은 아닌가. 머리 둘 곳 없이 떠도는 삶을 사신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수 없나요’ 라는 찬송을 하면서도 지상천국을 그리워하는 이기적인 기도만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명이 있는 신앙은 간데없고 세속화된 신학만이, 기독교문화만이, 기독교철학만이, 기독교사상만이, 기독교교육만이 번성하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를 위해 교회와 종교지도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라는 조직과 종교지도자를 위해 예수를 수단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직도 이 땅 구석구석에 라면가락처럼 누렇게 고들고들 시들어가는 아이들이 있는 한 이 축제의 성탄절에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서 기도하러 기도실에 갔지만 말 한마디 못하고 발이 저려 그냥 나온다. 기름진 배를 쓸면서 살찌는 것을 걱정하며 성탄을 축하하는 나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김재평.대림대학 전자정보통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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