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산업에 대한 외국자본 지배율이 아시아에서 최고 수준인 30%대이며, 선진국의 10%대보다도 크게 높은 것은 국내금융을 고사(枯死)시킬 위험이 크다. 이는 아시아 금융위기를 동시에 겪은 말레이시아(19%)와 태국(7%)은 물론 2~19%에 지나지 않는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외국자본이 경영을 지배하는 국내은행, 즉 외국계 은행들이 기업대출은 외면하고 가계대출에만 집중하는 경향도 문제점이 많다. 최근 한국은행이 제일·외환·한미 등 외국계 3개 은행의 경영실태를 국내 은행과 비교한 결과 외국계 은행의 총대출금 중 기업 대출 비중이 1998년 말의 82.9%에서 지난 9월말 49.6%로 낮아 졌다. 반면 가계 대출은 같은 기간 10.4%에서 45.6%로 급증했다.
자산운용면에서도 외국계 은행들은 금융시장 활성화의 효과가 높은 회사채나 주식·수익증권보다는 국공채·통안채 등 ‘안전 자산’ 위주로 돈을 굴렸다. 외국자본이 국내 경제를 야금야금 잠식하는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기업대출 축소와 설비투자 증대를 위한 금융자원 위축 등으로 이어져 경제성장 동력이 약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해결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정부가 지분을 갖고 있는 은행의 민영화를 국내 금융자본의 성장정도에 맞춰 추진하면 가능하다. 공적자금을 조기에 만들어 회수하는 데만 목적을 두지 말고 은행산업 전체에 미칠 영향을 염두에 두면서 은행 민영화를 추진해야 하는 것이다.
산업자본의 진출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기관투자가 중심의 국내 금융자본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함은 상식적인 논리다. 주요 선진국들처럼 펀드와 연기금·보험회사 등 기관투자가가 은행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주주군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급선무다.
불가피하게 외국자본에 매각하더라도 선진금융기업 습득에 한계가 있는 펀드계열보다는 은행계열 외국자본에 매각하고, 외국자본의 국적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외국 자본의 국내은행 지배율이 높아질수록 은행 민영화의 속도를 신중히 조절하고 기관투자가 중심의 국내금융자본을 육성해 나가는 것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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