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寒波)

"‘대한(大寒)이 소한(小寒) 집에 놀러 갔다가 추워 견디지 못해 나왔다’는 속담이 올 겨울엔 무색했다. 으레 대한 추위보단 먼저 다가오는 소한 추위가 더 매서웠던 게 올 소한은 어떻게 넘어간 지도 모르게 넘어갔다.

설 전날의 대한부터 시작된 한파는 설 연휴 내내 강세를 보여 수도전 동파 사고가 곳곳에서 사태를 이루었다. 눈까지 간간이 내린 길이 얼어붙은 데가 많아 특히 응달진 이면도로에선 설 대목 행인은 물론이고 자동차가 엉금엉금 기곤하였다. 수도권이 영하 12℃까지 내려가는 한파는 실로 오랜만이어서 올 겨울은 막바지 들어 겨울답게 넘기는 것 같다.

하긴 올 겨울 한파는 세계적으로 몰아쳤다. 미국의 동북부는 영하 20℃가 넘는 한파가 3주나 계속되어 30여명이 죽거나 실종됐다. 체코 루마니아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등 유럽에서는 우리의 설 연휴와 같은 기간에 영하 30℃까지 내려간 살인적 한파로 30여명이 사망했다. 심지어는 인도나 홍콩에서도 동사자가 나왔다. 그러나 추위도 상대적이다. 시베리아 벌판에선 영하 20∼30℃는 예사다. 러시아 사람들로서는 우리 나라나 미국 유럽의 한파를 유별난 한파로 여기진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인도나 홍콩의 한파를 한파로 여기는 덴 괴리감이 없지 않다. 홍콩에서 동사자를 낸 한파란 것은 겨우 영상 5℃였다.

우리가 설 대목 한파에 별나게 추위를 탄 것은 그만큼 내성이 약해진 탓이다. 폭설이 무릎까지 잠기도록 내리고 입김으로 서리가 일던 예전 추위에 비하면 지난 추위쯤은 추위도 아니다. 진짜 강추위에도 예전 아이들은 팽이치기 연날리기 썰매타기 등으로 추위와 맞서가며 놀았다. 지금의 아이들은 집안에서 컴퓨터 게임만 즐기는 방안퉁수가 됐다.

다음 달에 한파가 또 한 두차례 몰아칠 것이라는 기상대의 예보가 있었다. 자연의 조화속인 강추위야 봄이 되면 물러가게 마련이다. 해동이 기약되지 않은 채 얼어붙은 민심의 한파가 더 무섭다는 생각을 갖는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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