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흥기씨가 동숭아트센터 분장실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다. 지난달 30일 낮 공연을 마친 뒤 분장실에 들어선 그는 연극 ‘에쿠우스’(피터셰퍼 작·김광보 연출)의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 박사 역 분장을 한 그대로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다.
서라벌예대를 나와 1968년 극단 실험극장에 입단한 것이 36년 배우생활의 시발이었다. ‘닥터 지바고’등 수 많은 연극 출연과 함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중후한 연기를 보였다. “배역을 맡으면 배역의 인생에 자신의 혼을 담는다”고 했다. “그래서 여느 사람은 자신의 인생밖에 살지 못하지만 이 김흥기는 여러 사람의 인생을 경험하며 사는 것이 배우생활의 가장 큰 매력”이라며 너털 웃음을 짓곤 했다.
텔레비전 사극 ‘용의 눈물’에서 정도전 역을 리얼리티하게 해낸데 이어 최근에는 방영 중인 ‘무인시대’에서 정중부 역을 박진감 있게 소화했다. 많은 시청자들에게 그의 열연이 아직도 각인돼 있을 정도다.
흔히 연극인들은 연극에 대한 애정표현으로 ‘무대에서 죽고 싶다’는 수사를 쓴다. 프랑스의 연극배우 몰리에르드는 1673년 실제로 무대에서 연기 도중에 갑자기 쓰러져 사망했다.
연극 ‘에쿠우스’의 다이사트 역은 두 시간의 연극을 시종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매우 힘든 역할이다. 여기에 두달동안 하루에 8시간씩 연습하는 강행군을 한 것이 이래저래 피로가 누적된 것으로 연극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에쿠우스’는 예약이 4천여명이나 될만큼 관객의 관심을 모았다.
여러 사람의 인생을 사는게 좋아 배우 생활이 좋다는 그가 무대(분장실)에서 쓰러진 것은 정말 아깝다. 아무리 연극인은 ‘무대에서 죽고 싶다’ 지만 50대의 원숙한 연기가 여기서 좌절되는 것은 손실이다. 뇌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조속한 쾌유를 빈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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