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판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까 지난해 여름(8월14일~9월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회관에서 열렸던 서양화가 강형구씨의 개인전이 다시 생각난다. 당시 지점토로 빚은 전·현직 한국 대통령들의 얼굴이 선보였는데 대통령 각자의 개성을 과장한 캐리커처(Caricature)작품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턱과 입을 쑥 내밀었다. “경쟁자에 대한 시샘, 또 세상에 대한 불만을 담고 있는 표정”이라고 강형구 화가는 말했다. 그런데 귀가 없었다.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으려는 성격 아닌가”라고 화가는 되물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눈을 감은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내 전 재산은 누가 뭐래도 29만원”이라고 딱 잡아떼는 표정이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아리송한 미소를 지었다. 화가는 “약간 유들유들한 미소야말로 이 분의 특징”이라며 “겉은 온화해 보이지만 속은 알수 없다”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 두 뺨은 홀쭉하다. “한때 민주화의 우상이었지만 지금은 무력한 지도자의 얼굴”이라고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얼굴에서는 고집과 강단을 읽을 수 있었다. 화가는 “박 대통령의 표정은 불행한 최후를 암시하듯 좀 비극적”이라고 소개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약간 언짢은 듯 누구를 쏘아보고 있었다. 화가는 “지난 3월 TV로 중계된 ‘검사와의 대화’에 등장했던 노 대통령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그때 역대 대통령들의 표정은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얼굴은 강삼재 의원을 못마땅해 하는 표정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지원 비서실장을 사면시키지 못해 서운해 하고 있고, 전두환 전 대통령은 100억 괴자금에 연루된 차남 일로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노무현 대통령은 사돈 민씨 문제로 난감한 표정이 역력하다.
캐리커처이건 실물이건 파안대소하는 대통령의 얼굴이 안보이는 것은 유감이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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