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카초(1313~1375)의 대표적인 소설 ‘데카메론’은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이 펼치는 음담패설 등을 모은 것으로 인간이 추구하는 성적 욕망과 속임수를 풍자적으로 묘사했다.
근대소설의 시작으로 꼽히는 이 책은 호색적이고 음란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20세기초 일본에서도 판매금지를 당했다. 미국 관세국도 음란서적으로 판정한 바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친 프랑스의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오늘날 민주사상의 씨앗을 뿌리고 근대 교육철학의 기반을 구축한 개혁사상가이지만 당시에는 군주와 귀족들에 정면으로 대든 이단아이자 ‘정신 이상자’였다. 루소는 ‘인간불평등 기원론’에서 사유재산의 발생이 불평등을 초래한다고 주장, 사상이 불온하고 과격한 요주의 인물로 지목됐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1828~1910)는 ‘인생론’을 발간한 즉시 판매금지 처분을 당했고, ‘부활’에서는 동방정교회를 비판해 파문을 당한 후 방랑의 세월을 보내다가 시베리아의 시골역에서 객사했다.
이처럼 인류 역사 발전에 공헌한 위대한 저작들은 작가의 목숨을 바치고 얻은 값진 대가이기도 하다. 사상적 선지자들은 대부분 남보다 몇 십년 앞을 내다보는 안목을 갖고 기존 권위나 사회현실을 비판하고 개혁을 주장함으로써 기성세력과 부딪칠 수 밖에 없었다.
‘서양철학을 알려면 금서목록을 읽어라’는 말이 있을만큼 오늘날 고전으로 인정받는 상당수의 책들은 대부분 금서(禁書)였다.
우리나라에도 특히 1970년대에 소위 ‘금서목록’이 있었다. 노동관련 서적이나 사회과학서적, 체제에 저항하는 문학서적, 음란서적도 포함됐다. 신문지상에 판매금지 서적 목록이 게재되고 단속실적까지 보도됐으니 마치 ‘구해서 읽어 보라’는 격이었다.
니체(1844~1900)는 저작(著作)에 대해 “쓰인 것 중에서 나는 오로지 저자의 피로 쓴 것만을 애호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당신은 피가 정신임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니체의 이 말은 함부로 책을 낸 저자들을 부끄럽게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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