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국가 제도는 오례(五禮)로 표현된다. 국가 제사에 관한 길례(吉禮), 왕실 장례에 관한 흉례(凶禮), 군사 훈련에 관한 군례(軍禮), 왕실 경사에 관한 가례(嘉禮), 외국 사신을 접대하는 빈례(賓禮)로 구성됐다. 왕세자가 성균관에 가서 입학식을 하는 것은 가례로 특별한 것은 왕세자로 하여금 명륜당 마룻바닥에 엎드려 책을 읽도록 규정했다.
왕세자가 비록 장차 국왕이 될 존귀한 몸이라 해도, 이 날만은 학생 자격으로 스승에게 깍듯한 예를 갖추도록 한 것이다.
오례는 국가 차원에서 국왕과 왕실이 실천해야 할 예에 대한 규정이 대부분이지만 사대부와 일반 서민이 지켜야 할 예도 규정하고 있다. 과거시험 합격자 발표나 향촌의 활쏘기 시합과 관련된 예는 사대부 계층에 해당되는 예였고, 매년 80세 이상의 노인이 초청되던 궁중 양로연에서의 예는 일반서민에 해당되는 규정이었다.
오례의 정비를 통해 조선이라는 국가의 틀을 확정하려고 한 국왕은 세종이었다. 집현전 학자들에게 당나라의 ‘통전(通典)’, 명나라의 ‘예서’, 고려의 ‘고금상정례(古今詳定禮)’ 등을 연구토록 했다. 세종은 예제 연구사업에 직접 참여했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승하했다. 이후 세조가 세종의 유업을 이어 오례의 정비를 계속하였고 마침내 성종 5년(1474년)에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8권 6책이 완성됐다. 조선건국 이후 예치국가로서의 면모를 완전히 갖추기 까지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국조오례의’는 국왕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직분에 따라 실천해야 할 예제를 정리한 책이다.
예가 인간과 인간 사이를 구분하는 것이라면, 악(樂)은 예에 의해 구분된 인간을 화합시켜 일체감을 가지게 한다. 지난 3월12일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것은 193명의 국회의원들이 국민에게 보인 ‘무례(無禮)’때문이었다. 무례는 치기와 오기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국회의원들이 ‘국조오례의’를 생각하였다면 제 발등을 찍는 도끼를 손에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무례에 대한 판정을 빨리 내렸으면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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