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 없는데도 다리를 놓겠다는 사람”이란 선거 때 당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공약을 해놓고 보는 후보들의 허언(虛言)과 공약(空約)을 빚댄 야유다. 이번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역시 많은 후보들이 별 희한한 공약을 다 내걸었다.
서울 양천갑의 F후보는 “2005년 8월16일까지 남북통일을 실현하겠다”고 약속했고, 김포의 H후보는 “60세 이상의 고령자에게 월 50만원의 수당을 지급하겠다”고 선언했다. 강원도 고성·속초·양양 지역의 A후보는 “동해안 관광 활성화를 위해 93㎞에 이르는 해안 군사 철조망을 임기 중 모두 제거하겠다”고 주장했다. 정치인 부패 척결 문제에 대해서도 공약이 많이 나왔다. 서울 강북갑 I후보는 “뇌물토벌특공대를 조직하고 정부와 기업의 모든 수입과 지출을 수표로 처리토록 해 검은 돈의 흐름을 완전 차단시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광주북구에 출마한 J후보는 “시·도별로 특별수사청을 만들어 정치인은 물론 친·인척까지 모든 민·형사사건을 전담 조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강원도의 E후보는 “임기 중 서울~속초 고속철도를 개통시키겠다”고 공약했다.
국회의원이 마치 전지전능한 절대자로 착각하는 후보들이 내건 이런 공약을 믿고 안믿고는 그 지역 유권자들의 몫이지만 그래도 저질 인신공격보다는 한결 귀엽게 들린다.
각 정당들도 재원조달이 힘든 현란한 공약을 잔뜩 내놨다. 각 정당이 앞다퉈 내놓은 공약을 실제로 시행하려면 정부 예산을 적게는 연 12조원, 많게는 무려 41조원 이상 들여야 한다. 이는 우리나라 살림살이 실정을 감안할 때 막대한 적자재정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수준이다. 올해 정부 예산규모가 118조원(일반회계 기준)이나 실질성장률 목표치 5%를 계산하면 균형을 유지한 채 한 해에 늘릴 수 있는 정부 재정은 최대 10조원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성이 희박하다. ‘돈 없으면 말고’식이다.
이번 총선이 상대방의 패착(敗着)이나 실언을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 반사이익을 얻는 ‘손가락질 선거’로 흐르는 것도 한심하다. 각 정당이 스스로 개발해 낸 이슈가 아닌 상대당의 헛발질을 득표 동력으로 삼고 있는 모습은 무기력해 보인다. 기껏해야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200석 거여 견제론’이나 ‘거야 부활론’ 등으로 상대의 힘을 가당치도 않게 부풀리며 엄살을 떠는 것도 표를 공짜로 얻겠다는 얄팍한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이같은 여야의 안이한 접근 자세는 각 선거구의 국지전에도 영향을 미쳐 한동안 잠잠하던 흑색선전과 무책임한 폭로, 색깔론 등 구태를 재발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번 4·15 총선이 갖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다. 대통령 탄핵소추의 정당성 여부나 그에 대한 찬반론은 차치하고, 우선 미완의 정치개혁을 달성할 수 있는 중대한 기회라는 점이다. 그동안 우리 정치권이 돈선거, 지역주의, 부정부패로 얼룩져 왔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다음은 정치권의 후진성이 우리 사회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대는 21세기로 진입했는데 유독 정치만은 20세기에 머물러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제 투표일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기초이고 출발점이다. 민주주의의 꽃이다. 선거를 통해 민의가 표출되고 대표자가 선출됨으로써 대의제의 기틀이 만들어지며 국민이 주권자임을 확인하게 된다. 올해 총선에서 유권자의 선택이 중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어느 정당을, 누구를 선택 하느냐에 따라서 한국 정치의 미래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찍을 만한 인물, 믿을 만한 정당이 없기 때문에 투표를 하지 않는다”는 말은 나의 권리를, 그리고 국민이기를 포기한다는 뜻과 다름없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으면 정치를, 정치인을 비판할 자격도 없다. 국민을 기만하는 정치인, 한국정치발전을 가로 막는 정당을 이번에 완전히 도태시켜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