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판 선거판에 적토마, 흑마(오추마) 등 중국 삼국지와 초한지에서 나오는 명품 말(馬)들이 이야기가 전국적으로 크게 확산되고 있다 한다. 선거판에 웬 말 타령인가 할 것이다.
이들 명마들에 대한 자세한 이력을 굳이 살펴보고 싶지는 않으나 이 명마들이 선거판에서 그리 좋지 않게 쓰여지는 것 같아 그냥 웃고 넘어가기에는 웬지 꺼림칙하다. 잡털하나 없이 한시진에 수천리를 달린다하여 관우와 항우가 탔다는 명마 적토마와 흑마.
그런데 제17대 총선 투표일을 불과 이틀 앞두고 선거판에 나도는 적토마는 일명 ‘빨갱이’를 빗대는 것으로 색깔논쟁을 대변하고 있고 흑마는 각종 ‘흑색선전’을 빗대어 치열해지고 있는 상호비방을 풍자한 용어로 전국적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럴싸하게 포장됐지만 선거때마다 나타났던 망령들이 막판 선거전에 또다시 고개를 쳐들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어린시절 추억속에서 남아있던 ‘땅 따먹기’ 놀이도 최근 암암리에 선거판의 한 노름(?)으로 또다시 각광받고 있다 한다. ‘○○지역은 ○○○의 아성지역, ○○지역은 ○○당의 몰표지역, ○○지역은 ○○당의 자존심’ 등등. 정치판에 영원한 숙제로 남아있던 지역주의도 땅따먹기 놀이에 비유돼 또다시 망령처럼 스물스물 피어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구태(舊態)들은 대부분 각당의 지도부에 의해 비롯돼 각당을 지지하는 네티즌이나 각당이 운영하는 구전홍보대에 의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 선거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수십년동안 치러진 선거때마다 그 양태는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그 본질은 그대로 안고 또다시 유권자들을 현혹하는 이런 선거판의 악태(惡態)는 진정 ‘악령(惡靈)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선거에 임해서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정치적 논리나 목적을 부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이겨야 하나’는 수단과 방법에 대해서는 강한 부정을 할 수 밖에 없는 양태가 이번 제17대 총선에서도 재현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양태가 선거 막판때마다 재현될까? 여러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 중 ‘유권자의 책임도 크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선거전이 막바지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추정되는 투표율은 60%안팎이라 한다. 이를 역으로 생각한다면 투표일을 이틀밖에 남겨놓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40%, 10명의 유권자중 4명은 지지후보나 지지 정당을 결정하지 않은(혹은 못한) 일명 부동층(浮動層)이거나 국민의 의무이자 권리인 참정권(參政權)을 포기하는 무책임한 유권자라는 분석이 가능한 것이다.
이러다 보니 각당, 각 후보들은 이들 부동층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기위한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자연 귀를 솔깃하게 할 수 있는 사상논쟁이나 흑색선전, 출신지 등 귀소본능을 자극하는 지역주의에 호소하는 가장 능률적인 방법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 부동층 유권자들이 평소에는 어떠했던 간에 최소한 선거에 임해서 만큼은 분명한 자기의사를 밝히고 투표에 참여해 이를 관철시키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을 하면 이런 구태들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상당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일까?
유권자들이 탈각탈피(脫殼脫皮)의 자세를 갖지 않으면 이번 총선을 치르고도 정치권은 결코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려면 경기도내 731만2천여명의 유권자, 특히 스스로가 부동층이라는 생각을 작은 유권자는 정치권의 구태를 청산하는 심판자가 될 지, 아니면 투표도 하지않은채 선거후 정치권에 불만을 표출하는 주변인으로 남을 지 이제부터라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
/정일형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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