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력 부족한 장례문화

망자의 시신을 처리하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개인이나 가족뿐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중대한 관심사다. 특히 우리나라는 유교주의와 풍수지리 사상의 영향으로 오랫동안 매장이 주요 장법(葬法)으로 이어져 왔다.

그런데 최근 한국토지행정학회가 실시한 장묘문화에 대한 국민의식을 설문조사한 결과 68.6%가 자신의 장례방법으로 화장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보다 4.7%가 늘어났다. 이는 매장을 선호하는 전통적인 장례문화가 화장으로 점차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 묘지가 차지하는 국토면적을 감안할 때 화장은 장려할 만한 장묘 문화이다.

그러나 화장도 문제점이 많다. 화장 후 유골을 산이나 강에 뿌리는 것이 아니라 최근 들어 가족(문중) 납골묘에 안치하는 장법이 유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적 여유가 있는 문중이나 가정에서는 납골묘를 조성할 때 석물(石物)을 과다하게 사용해 새로운 형태의 호화분묘라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이런 호화 납골묘 조성을 방치할 경우 봉분만 있는 매장묘보다 더 큰 자연훼손이 예상된다. 결국 묘지를 대신해 납골묘가 강산을 뒤덮을 우려가 있다.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설치한 집단 납골당도 지나친 ‘님비’현상으로 추가 건립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여서 서민들은 납골보관 시설을 구하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다. 집단 납골당의 유골보관을 일정기간으로 단축해야 하는 제도는 이래서 필요하다.

유럽, 미국 등 선진국은 개인묘지가 허용되지 않고 묘지가 집단화, 공원화 돼 있다. 집단묘지 내 납골묘에 설치되는 납골묘도 매장묘보다 훨씬 작은 묘지공간을 이용하고 있으며 평장(平葬)하여 작은 비석을 세우거나 꽃을 심어 아담한 꽃밭처럼 꾸며 놓는다.

최근 일본에서 민간단체들이 권장하고 있는 자연장이나 수목장, 그리고 독일에서 실행되고 있는 숲을 이용한 나무 무덤 등 죽음을 최대한 빠르게 자연으로 되돌리는 환경친화적 장법(葬法)들이 새롭게 각광 받고 있는 현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가 화장을 권장하지 않더라도 대다수 국민이 화장을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받아들일 만큼 장례의식이 바뀌었다. 화장문화를 뒷받침하는 장묘정책을 속히 마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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