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곰 여우는 전래되는 옛 이야기에 흔히 나오는 상징적 동물이다.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아주 먼 옛날에…”라고 하였던 호랑이는 호환(虎患)이 무섭긴 했지만 영물로 쳤다. 곰은 “곰 같이 느리다”느니 “곰 같이 미련하다”느니 했으나 결코 행동이 둔하거나 어리석은 동물이 아니다. 여우 또한 약삭빠른 동물로 비유해 나쁘게 알려졌다. 그러나 알고보면 백년 묵은 여우가 사람으로 둔갑한다는 옛 이야기 내용만큼 나쁜 동물은 아니다.
지난달 23일 강원도 양구에서 숨진 채 발견된 토종 여우의 사체가 계속 화제를 낳고 있다. 무엇보다 궁금한 사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의문의 여우 변사체가 의문의 사람 변시체보다 사인 규명이 더 어려운 것 같다. 독·극물로도 죽지 않았고, 입가에 흘린 피는 혀를 깨물어 생긴 것이고, 굶어 죽은 것도 아니라는 국립환경연구원의 최종 부검결과 발표는 결국 사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의 의문으로 남겨놓고 있다.
한가지 다행스런 것은 수컷의 토종 여우 사체 고환에서 살아있는 정자를 채취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죽은 여우 몸에서 살아있는 정자 채취가 가능했던 것은 정말 희한한 일이다. 채취된 토종 여우 정자 1㏄를 냉동 보관해 두고 인공 수정을 위한 암컷 여우를 물색하고 있다는 것이 국립환경원측 얘기다.
호랑이 곰 여우는 국내 산야에서는 이미 멸종되었다. 여우는 1978년 지리산에서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췄다. 그랬던 게 26년만에 비록 죽은 것이지만 토종 여우가 발견돼 학계를 흥분시키고 있는 것이다.
토종 여우의 인공수정을 서둔다지만 국내 동물원에서 사육중인 여우에 토종 여우가 없는 게 문제다. 결국 인공수정을 해도 반쪽 토종 여우가 생산될 수 밖에 없다. 이렇게라도 씨를 남기고 죽은 토종 여우가 대견하지만, 무리지어 함께 살았을 것으로 보이는 암컷이나 새끼들이 모습을 드러낼 법도 한데 영 소식이 없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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