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4·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승리했다. ‘박풍(朴風)’도 ‘노풍(老風)’도 ‘대통령 탄핵 역풍’을 당하지 못했다. 총선 이튿날 택시 운전기사는 야당 누구와 불공대천지원수지간인지’ “우리당이 적어도 200석을 차지했어야 통쾌한 일인데 아쉽다”며 정동영 당의장의 ‘노인 발언’을 또 탓했다. 전체 299명 중 200명? 그건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다. 운전기사는 “당의장이 비례대표를 사퇴한 것은 정치적 계산”이라고 단언했다.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의 임무가 끝나면 노무현 정부의 제2기 국무총리로 지명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아니면 ‘원외 여당 대표’에 있지는 않을 거라고 내다 봤다. 재,보선에 출마할 거라는 얘기였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자민련이 가세한 ‘3·12 대통령 탄핵’이 부당한 무리수였음은 4·15 총선이 확실히 증명했다. 탄핵을 발의한 3개 야당, 특히 민주당과 자민련은 무참히 쓰러졌다. 그래도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 덕분으로 121석이나 차지했다. 패한 게 결코 아니다. 민주당은 겨우 9명, 거기다가 ‘삼보일배’로 눈물겹게 지지를 호소하며 전국을 누빈 추미애 선대위원장은 자신의 지역구에서도 외면 당했다. 반노성향이었던 박상천 전 대표와 정균환 전 총무 등도 줄줄이 참패했다.
조순형 민주당 대표, 최병렬 한나라당 전 대표, 홍사덕 전 총무, 유용태 총무,이른바 ‘탄핵 4인방’ 중 조순형, 홍사덕, 유용태 의원은 모두 떨어졌다. 최병렬 전 대표가 나왔더라면 아마 봉변을 당했을 것이다. 더구나 홍사덕 의원은 선거 전 기자회견을 자청, 노 대통령에게 “탄핵안의 모든 책임은 홍사덕에게 있다. 홍사덕이 당선되면 노 대통령이 물러나고 반대면 내가 물러나겠다”고 큰소리쳤다.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5선 경륜이 아깝긴 하지만 굳이 정치판 떠나겠다는데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10선의 꿈을 이루지 못한 것도 탄핵에 동조했기 때문이다. 잠자코 있었으면 중간이라도 됐을텐데 막판에 눈치를 잘 못 봤다. 적어도 4석은 넘어 비례대표는 됐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10명이 국회로 대거 입성했다. 드디어 한국정치는 개혁과 진보의 양 날개를 달았다. 좌·우 한쪽만 있는 날개는 하늘을 날지 못한다. 17대 국회의원 299명 중 초선이 187명이다. 여성이 39명이다. 국회가 물갈이 됐다. 30·40대가 3분의 1을 넘었다. 국회가 젊어졌다.
우리당이 여당이 되자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철회’ 얘기가 정치의 중심이 됐다. 16대 국회에서 탄핵문제를 정치적으로 매듭지은 뒤 17대 국회를 맞이해 상생의 정치를 하자는 주장이다.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3당의 반열에 오른 민노당의 권영길 대표도 탄핵 철회에 동조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권한정지 한 달을 맞아 청와대 출입 기자들과 산행에 나선 지난 11일 “봄이 오고 꽃이 활짝 피니 오히려 어두운 심경하고 대비된다”고 심경을 피력했다. “나는 봄을 맞으려면 심판을 두번 거쳐야 한다”고도 했다. 그래서 대다수 국민들이 노 대통령에게 ‘봄다운 봄’을 주기 위해 총선에서 ‘탄핵 반대’에 힘을 실어 준 것이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은 국내외적으로 할 일이 매우 많아 졌다. 야당 의원들이 우리당에 전입하면 날개 달린 호랑이가 되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그래도 힘이 넘치는 황소같은 우리당을 부리게 됐다. 겨울 외양간에서 나온 황소에 그대로 탈지, 코뚜레를 꿰어 논밭을 갈고 짐을 나르게 할지는 노 대통령의 몫이다. 자고로 농부는 흙을 사랑했다. 황소의 마음을 잘 읽었다. 노 대통령의 본격적인 임무는 사실상 ‘탄핵 기각’ 이후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지금은 농부가 할 일이 많은 봄이다. 대지(大地)가 농부를 부르고 있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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