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대전 당시 미 군함을 들이받아 함께 침몰하곤 한 일본군의 가미가제(神風)특공대 비행병사는 16~17세의 소년들이었다. 귀밑 복숭아털의 앳된 이 소년병들은 출격 직전 일황이 내렸다는 어사주 한잔을 영광된 마음으로 먹고 자살특공 길에 올랐다. 사무라이(武士)의 할복자살은 패배에 대한 책임을 비장한 죽음으로 입증해 보이는 이들의 전통적 자살방법이다.
2차대전 패전 직후, 일본에서 살고 있는 한 언니가 조선에 사는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언니는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米軍(미군·일본은 美國을 米國이라고 한다)에게 몸을 내주고 있다. 너도 하루빨리 반도(조선)에서 나와 맥아더 점령군사령부를 회유하는 데 힘쓰기 바란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정치권에도 공산당을 비롯한 좌파 정당들이 있지만 이들은 일본의 정체성을 훼손시키진 않는다. 이라크 저항세력이 자위대 철군을 요구하며 붙잡아둔 3명의 인질 가족들이 한동안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했다. 공연히 사지(死地)로 가 국가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는 일본사회의 눈총 때문이었다. 남의 나라에 간 자국 국민이 억류된 것은 주권침해다. 이를 지탄하는 것을 마땅하다. 일본 역시 그러했으면서도 인질석방의 협상은 거부했다. 죽음을 눈 앞에 둔 자국 국민의 절박한 생사를 초월했다. 우리 같으면 비정하다 하여 야단법석이 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질은 다행히 그냥 풀려 일본에 도착했으나 그들 또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거듭거듭 되풀이 했다. 언론도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이것이 일본의 모습이다. 사무라이 시대나 가미가제특공대 시대나 오늘이나 아무 변함이 없다. 여느 땐 개인주의를 탐닉하여도 일단 유사시엔 전체주의 의식으로 똘똘 뭉치는 것이 일본사회다.
일본 사람들은 한 두 명씩 상대하면 무난히 완력으로 이길 수 있어도 떼지어 대들면 무서운 그런 사람들이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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