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錢有恨

소설가 춘원 이광수(李光洙·1892~?)는 평북 정주에서 5대 독자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뽕나무 잎을 도둑질해서 키웠다. 그나마 열한 살 때 콜레라로 부모를 잃었다.그는 나

이 어린 여동생 둘을 거느린 소년가장이었다.

소설가 채만식(蔡萬植·1902~1950)은 자수성가한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엔 어려움

을 모르고 살았으나 말년에는 수시로 전당포에 물건을 맡겨야 할 만큼 생활고를 겪었다.

친구의 아들에게 원고지 스무권만 보내달라고 부탁했는가 하면 아이들에게는 자기 양복

을 팔아 생활에 보태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채만식은 말년에 자신이 죽으면 상여를 들꽃으로 덮고 화장을 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평소 하얀 마름꽃을 좋아해 그의 호는 백릉(白菱)이었다.그는 유언대로 들꽃에 묻혀

저세상으로 갔다.

가난한 작가 이효석(李孝石·1907~1942)은 경성 토호 집안이었던 처가에 떳떳한 모습

을 보여주고싶어 백방으로 직업을 구했다.

중학시절 은사가 주선해준 취직 자리는 총독부 경무국 검열계였다.문인들의 작품을 사전

검열하는 곳이다.동료들의 지탄이 빗발쳤다.

이효석은 열흘 만에 직장을 그만뒀다.

“필승아,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 담판이다.흥패가 이 고비에 달려 있음을 내가 잘 안다.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겠다.그리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십여 뭇먹어보겠다.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궁둥이가쏙쏙구리 돈을 잡아 먹는다.돈,돈,슬픈 일이다 ”죽음을 앞두고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한 김유정(金裕貞·1908~1937)의 편지다.

1930년대를 풍미한 작가들의 삶은 거개가 가난했다.

얼마 전 ‘돈없는 세상에서 살고싶다 ’는 내용의 詩를 읽었다.‘돈,돈은 슬픈 일이다 ’라는 김유정의 처절한 목소리가 들렸다.예나 지금이나 돈이 사람을 울린다.김유정은 돈이 없어 일찍 죽었다.무전유한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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